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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좀 탑시다" 버스기사 "안됩니다"…정류장서 90분째 발동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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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출근은 할 수 있게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타고 갑시다.” “한 시간 기다렸어요. 갑자기 이러면 경기도 직장인들은 어떻게 합니까.“

 직행좌석버스(광역버스) 입석 승차가 금지된 첫날인 16일 오전 7시. 기자는 한 시간 일찍 집을 나와 경기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의 버스정류장에 서 있었다.

정류장엔 시민 15, 16명이 서울 사당역으로 향하는 붉은색 7780번 광역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버스 기사들은 멈추지 않고 정류장을 통과하거나 잠시 버스를 세운 뒤 “죄송하지만 못 타신다”며 손사래를 쳤다. 버스에는 ‘7월 16일부터 광역버스 입석금지가 전면 시행됩니다’라는 안내문이 달려 있었다.

 이날 오전 8시. 평소처럼 버스를 탔다면 회사에 들어갔을 시간이었다. 이때까지 7780번 버스 13대가 이목동 정류장을 지나갔지만 승객을 한 명도 태우지 못했다. 수원 시내를 거치면서 수원 맨 위쪽에 위치한 이목동 정류장에 올 때쯤에는 만석이 됐기 때문이다. 한 시간 동안 이런 상황이 거듭되자 시민들은 도로에 내려가 버스를 세우려 하거나 버스를 쾅쾅 치며 욕을 내뱉기도 했다. 일부 시민은 20~30분 더 기다리다가 가장 가까운 전철역인 성균관대역으로 발길을 옮겼다.

 오전 8시3분쯤 좌석이 빈 버스가 도착해 3명이 올라탔지만 다음 버스는 또다시 만석이었다. 기자는 약 한 시간 반을 기다려 오전 8시26 분쯤 버스를 탔다. 그것도 현장에 나온 공무원이 어쩔 수 없이 입석을 허용한 버스였다. 기사 윤모(45)씨는 “승객들 원성이 하도 많아 정류장에 나와 있던 시청 공무원이 입석으로 태우라고 허락했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용답동으로 출근하는 회사원 박모(32)씨는 “정부는 현실을 알고 정책을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종점에서 가까운 곳에 살지 않으면 서울로 이사가야 할 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수도권 곳곳에서 출근길 입석 금지로 인한 대혼란이 빚어졌다. 오전 8시 경기 성남시 판교 백현 2단지에서 광화문으로 통근하는 회사원 이모(34)씨는 25분을 기다린 끝에 5500-1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이씨는 “광화문행 노선 6~7개가 지나가는 정류장이라 평소 5분 안에 버스를 탈 수 있었는데 오늘은 20대가 그냥 지나갔다”며 “회사에 지각할 것 같다고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정부와 버스회사들이 혼란에 대비해 운행 대수를 늘리면서 서울 시내 일부에서도 출근길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국토교통부는 수도권 직행좌석버스 62개 노선에 총 222대의 버스를 투입했다. 서울 남대문 세무서 앞 정류장에서 내린 직장인 이길용(34)씨는 “버스전용차선 소통이 원활치 않아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이런 혼란은 정부가 입석 금지 규정을 이날부터 엄격히 적용한 데 따른 것이었다. 고속도로 등 자동차 전용도로를 지나는 직행좌석버스는 도로교통법 시행령 22조에 따라 모든 승객이 안전벨트를 매야 한다. 입석은 당연히 금지된다. 관련 시행령이 2013년 6월 개정됐지만 정부와 버스회사들은 관행적으로 입석을 허용해왔다. 그만큼 출퇴근 시간대 버스 부족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의 2013년 조사 자료에 따르면 출근 시간대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는 1371대(112개 노선)로 이용객 9만8222명 중 1만4197명이 버스에 서서 출근을 해왔다. 맹성규 국토부 교통물류실장은 “버스공급을 늘리고 중장기적으로 2층 버스를 도입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며 “한 달간 계도를 한 뒤 8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단속을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화·이승호·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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