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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저성장의 부담을 공평히 | 김만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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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차 「오일·쇼크」의 엄습으로 80년 세계 경제는 심한 난기류 속에 싸여있다. 이런 불투명한 환경 속에 한국경제는 어떤 충격을 맞을 것이며 이를 현명히 넘길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80년 한국경제가 처해 있는 상황과 이에 알맞은 정책방향을 한·미·일 전문가를 통해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외환 조달 부담, 순조롭게 해결>
지금 우리 경제는 급변하는 국내 정치사회 질서와 대외 여건의 악화로 심각한 난국에 처해 있어 정부는 경제의 「위기관리」에 커다란 시련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새로운 정치풍토 하에서 각계 각층의 여망은 높아가고 있으나 이를 충족시켜 줄 수 없어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높아갈 것이다.
우리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는 대내외 여건의 변화로는 우선 제2의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에 따른 세계 경제의 후퇴를 들 수 있다. 해외 경기의 침체는 우리 경제의 성장의 원동력이 외어 왔던 수출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또한 값비싼 원유의 도입은 외환사정을 악화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물가상승의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더구나 방만한 재정·금융정책의 운영, 해외 원자재 가격의 상승, 임금과 물가의 악순환에 기인하는 고질화된 「인플레」는 소득분배의 형평을 깨뜨리고 불건전한 소비와 투기의 풍조를 조장하는 등 사회적인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대내외 여건 하에서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을 통한 고용의 창출과 국제수지의 개선전략은 한계에 봉착하였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며 일시적이나마 저성장은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정책상의 과제는 저성장 속에서 우선 「인플레」의 가속화를 억제하고 실업과 기업도산의 확대를 방지하고 국제수지의 악화에 따른 외환조달의 부담을 순조롭게 해결하는 것이다. 이들 과제는 모두가 한결같이 어려운 것들이며 강력한 행정 집행력의 뒷받침 없이는 쉽게 해결될 수 없으리라는 것도 짐작은 간다.
더구나 지난 1년 동안의 안정화 시책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기존제도의 근본적인 개혁 없이 저성장을 통해 안정을 기할 수 있는 재정·금융의 긴축, 투자 재원의 획기적인 재분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현 정부에 짧은 시일 내에 별로 인기도 없는 제도적 개혁을 추진하여 그 바탕 위에서 합리적이고 공평한 정책을 능률적으로 집행해 주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한 주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주어진 대내외 여건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이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므로 정부는 국민적인 이해와 합의를 얻어 이를 기반으로 하여 과감한 정책을 결단력 있게 펴나감으로써 경제위기를 관리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당면과제간에는 뚜렷한 상호 득실관계가 존재한다. 즉 이들 과제는 서로 상충되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어느 한 문제의 해결, 예를 들어 안정에 너무 치우치다 보면 실업과 기업도산의 증가와 외채조달의 문제를 크게 악화시켜 어느 특정 계층이나 부문에 커다란 타격을 가져올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정치적인 위기마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물가안정 바탕 위서 성장 추구>
따라서 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지혜로운 접근방법은 각계 각층의 소망과 기대, 그리고 각 부문의 문제 중 어느 하나도 속시원히 해결은 못하지만 어느 특정 계층의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정책추진이라고 하겠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면 모든 계층을 전부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해빙책이란 있을 수 없다.
어느 차선의 해결책을 택하든 간에 이에 따른 불이익과 불만족을 모두가 공평하게 감내하는 길밖에는 없다. 따라서 기업은 긴축에 따른 부작용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겠고 근로자들은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해야 하겠다. 아울러 정부는 안정을 위해 실업사태를 유발하거나 성장을 위해 안정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시책은 피해야 할 것이다.
특히 실업문제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긴축을 완화하거나 우유부단한 시책을 계속하여 국제수지의 위기를 자초해서는 안될 것이다. 만일 국제수지가 악화되는 경우 IMF를 비롯한 국제기구로부터 긴축정책을 강요당할 수도 있는바 이와 같은 수치스럽고 불행한 결과는 반드시 피해야 하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경제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정부의 기본 정책 방향은 시의 적절하고 강력한 대응책을 수립·집행함으로써 급격한 물가상승과 국제수지의 위기를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우선 국내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국민에게 알리고 정부시책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얻도록 노력하는 반면 대외적으로는 결단력 있는 경제정책의 추진을 통해 경제관리 능력을 과시하여 외국의 신뢰도를 제고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재정·금융의 긴축과 부당한 독과점 가격의 인상억제를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하고 특히 농산물 등 생필품 가격안정에 주력하여 서민생활의 안정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고용기회 늘려 서민생활 안정>
셋째로 가용재정·금융재원의 대폭적인 조정을 통해 저성장에서 야기되는 실업과 기업의 도산을 방지하며 마지막으로 장단기 「에너지」 대책을 수립하여 「에너지」의 절약과 합리적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석유부족 사태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저성장 속에서 예상되는 물가·실업·국제수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시적인 정책수단은 금리의 자율화와 정책금융의 축소 조정을 기본으로 하는 금융의 합리화, 환율의 현실화와 정부예산의 재조정으로 집약될 수 있다. 금융의 합리화는 국내 저축을 유도하며 과다한 유동성을 흡수하여 금융긴축을 용이하게 할 것이며 물가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아울러 정책 당국은 금리의 자율화로 비「인플레」적인 자금을 공급하여 기업의 자금난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며 은행대출의 대기업 편중현상도 어느 정도 시정할 수 있을 것이다.
환율의 조정은 수출 채산성을 향상시키고 「에너지」의 합리적인 이용과 절약을 유도하고 중동진출 등 해외 용역 수출을 촉진하여 결과적으로 해외 차입 능력을 제고하여 국제수지의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정부예산을 재조정하여 중소기업 등 노동집약적인 산업과 소형 주택의 대량 건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취로사업과 직업훈련을 확대하며 구호대상자에 대한 생계비 지원을 확대한다면 이와 같은 정부의 예산정책은 고용기회의 확대와 서민생활의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거시정책의 집행에 있어서 한가지 분명히 할 사실은 금융의 합리화는 반드시 환율의 조정과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금리의 자율화 등으로 효과적인 긴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환율의 인상은 대외 경쟁력을 강화하기보다는 물가만을 올릴 우려가 있다.
즉 금리의 자율화를 통해 유동성의 과다로 인한 물가상승 요인을 제거해야만 환율인상에 따르는 「코스트」상승 압력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환율인상과 물가상승의 악순환도 예방할 수 있다.
우리 경제는 74-75년의 석유파동 당시보다 더 어려운 경제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슬기롭게 관리해 가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어떠한 새로운 시책의 구상보다는 좋은 시책을 국민적인 합의를 토대로 차질 없이 강력히 추진하는데 있다고 본다.
물론 앞에서 제시한 거시정책은 어느 하나도 인기 있는 정책은 되지 못한다.
따라서 경제 위기 관리의 관건은 현 정부가 모든 저항을 무릅쓰고 얼마나 강력히 이들 정책을 밀고 나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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