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차선 강남대로 마구 건너 … 교통사망 57%가 보행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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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우리 사회 곳곳엔 안전불감증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중앙일보가 전문가와 함께 둘러본 수재(水災) 위험 현장부터 그랬다. 비가 쏟아지면 돌이 굴러내리는 암벽이 학교 건물과 맞닿아 있다시피 한 곳도 있었다. 산업 현장에서 용접 불꽃 등으로 잦은 인명사고를 유발하는 화재(火災) 불감증 실태도 고발한다. 정부와 국회의 국가개조 작업 진행 상황, 고질적인 무단횡단의 문제점도 점검했다.


15일 오전 8시 서울 퇴계로2가 남대문세무서 앞. 출근시간대 버스 중앙차로를 이용하기 위해 무단횡단을 하거나 차도 위를 걷는 시민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아직 정류장에 들어서지도 않은 버스를 향해 손짓을 하며 달려가는 이들도 있었다. 회사원 윤모(35)씨는 “횡단보도를 이용하면 멀리 돌아가야 해 위험한 걸 알면서도 차도로 다니게 된다”고 말했다.

  10차선인 서울 강남대로에서도 무단횡단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도로를 가로질러 버스전용 중앙차로에 진입한 양모(34·여)씨는 “버스가 도착하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져 무단횡단을 하게 된다. 신호를 기다리려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뛰기 시작하면 나도 따라 뛰게 된다”고 말했다. 강남대로에서는 갑자기 도로에 뛰어드는 사람을 피하기 위해 급정차하는 택시·버스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택시 운전기사 황성곤(63)씨는 “갑자기 사람들이 튀어나와 가슴을 쓸어내린다”면서 “이어폰을 낀 직장인이나 학생들은 경적을 울려도 듣지 못해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서울지방경찰청의 협조를 받아 서울 주요 버스전용 중앙차로와 교차로를 관찰했더니 무심코 무단횡단, 차도 통행을 일삼는 시민의 모습을 자주 확인할 수 있었다. ‘일상 속 안전불감증’이 매우 심각했다.

  사소한 안전불감증은 참사로 이어지기 쉽다. 서울경찰청 교통과에 따르면 올 들어 4월까지 시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125명이 사망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전체 사고 건수(1만2063건)는 줄었지만 사망자는 늘었다. 보행자 사망사고가 56.8%로 많았다. 절반 이상이 무단횡단, 차도 통행, 도로에 눕기 등 본인 과실에 의한 사고였다. 실제로 4월 말 강남대로 뱅뱅사거리를 무단횡단하던 A씨(57)가 승용차에 치여 사망했다. 금천구 독산로 앞 차도에서는 B씨(50·여)가 만취한 상태로 누워 자다가 택시에 깔려 사망했다.

 교통사고로 중·경상 등 부상을 입은 사람도 1만6783명이나 됐다. 버스 중앙차로와 교차로에서 사고가 빈발했다. 지난해 보행자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은 서대문 세란병원~영천시장 앞(29건·3명 사망)과 종로 백제약국 앞(14건·3명 사망)인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에서는 강남로터리~교보로터리, 경기고로터리~삼릉로로터리에서 무단횡단 사고가 많았다.

이유정·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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