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협회 113곳 … 정부 일 뭘 맡았는지 알 수 없는 곳도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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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관피아(관료+마피아)’의 온상은 흔히 말하는 ‘유관기관’이다. 정부로부터 규제 권한을 독점적으로 위임받은 조합·연맹·협회 등을 말한다.

뿌리는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가 대놓고 하기 껄끄러운 규제를 민간 자율이란 포장을 씌워 한 것이다. 명목상 민간조직이지만 정부 규제를 대행하다 보니 회원사와 갑·을 관계가 된 건 당연했다. 이런 조직이 급격히 늘어난 건 1990년대 김영삼 정부 시절이다. ‘작은 정부’를 내세우려다 보니 각종 정부 규제를 유관기관으로 넘겼다. 정부로선 규제에 필요한 예산을 줄일 수 있고 유관기관은 정부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할 수 있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짬짜미’가 이뤄졌다. 게다가 해당 부처 입장에선 유관기관 기관장에 퇴직 관료를 내보낼 수 있으니 인사 숨통을 트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현재 민간기업을 제외하고 관피아가 갈 수 있는 공직 유관단체와 각종 협회는 1000여 곳에 이른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설립했거나 운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은 공직 유관단체로 지정한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시설관리공단, 정부의 직접 보조를 받는 재단이나 연구원·센터 등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올해 7월 1일 기준 905곳이다. 이런 곳은 기관장이나 주요 임원이 재산을 등록해야 한다. 공직 유관단체가 아니면서도 정부 업무를 위탁받아 하는 민간협회도 113곳이다. 각종 금융협회와 한국항만협회 등이다. 그동안엔 민간단체란 이유로 공직자의 취업 때 심사를 면제해 줬지만 지난달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돼 취업심사를 받도록 했다.

 그러나 공직 유관단체나 민간협회의 사후 관리는 여전히 사각지대다. 어떤 기관이 어떤 업무를 위임받았는지, 사후 감독은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국민은 알 도리가 없다. 공공기관 현황을 알려주는 정보 사이트 알리오(www.alio.go.kr)에도 없고 정부 홈페이지에서도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없다. 퇴직 관료가 기관장으로 앉아 있다 보니 해당 부처로선 수술칼을 들이대기가 쉽지 않다. 해당 기관이 관피아를 받아들이는 이유도 이런 방패막이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관피아 척결을 위해선 우선 이런 조합·협회·연맹 등 유관기관에 대한 일제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민간과 경쟁이 가능한 업무는 과감하게 민간에 개방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에선 자동차 정기검사 업무를 일정한 자격을 갖춘 민간 정비소에도 허용하고 있다.

사후 감독도 지금보다 훨씬 엄격하게 해야 한다. 특히 국민의 안전이나 시장 건전성과 관련된 위임 규제는 제대로 집행하지 못했을 경우 개인은 물론 해당 단체까지 패가망신할 정도로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별취재팀=장세정·김원배·박현영·강병철·유지혜·이태경·최선욱·윤석만·허진·김기환 기자, 뉴욕·런던·도쿄=이상렬·고정애·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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