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다 대학 간 '쌀박사' 류수노, 방송대 출신 첫 총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학벌도 보잘것없는 저를 총장으로 뽑아준 것은 저를 위기의 바다를 헤쳐 갈 선장으로 봤다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쌀박사’로 불리는 농부 출신 류수노(58·농학·사진) 교수가 한국방송통신대 7대 총장 임용 후보자로 선정됐다. 방송대 1회 졸업생으로 첫 방송대 출신 교수인 그가 이제 첫 방송대 출신 총장 시대를 여는 셈이다. 지난 11일 총장후보자 추천위원회 투표에서 4명의 후보자 중 류 교수가 31표로 1위, 김영구(59·중어중문학) 교수가 19표로 2위에 선정됐다. 국립대학인 방송대 총장은 통상 1순위 후보자가 교육부로부터 인가를 받아 최종 임용된다. 임기는 올 9월부터 4년간이다.

 류 교수는 ‘슈퍼 자미(紫米)’와 ‘슈퍼 홍미(紅米)’ 등 7개의 쌀 품종을 개발한 국내 농학 연구의 선구자다. 그가 개발한 쌀 품종은 노화와 각종 성인병의 주범인 유해 산소를 없애는 안토시아닌이 풍부해 ‘수퍼쌀’로 불린다. ‘수퍼쌀’ 연구로 류 교수는 2008·2010·2012년 대한민국 농식품개발 대상을 받았다. ‘수퍼쌀’은 미국과 일본에도 특허 등록이 돼 있고 기업체 3곳에 기술이전을 해 3년간 26억55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그는 방송대 졸업생으론 최초로 1999년에 방송대 교수로 임용됐다. 지금까지 100편이 넘는 논문을 썼다. 매년 겨울엔 쌀 연구를 위해 3모작이 가능한 필리핀으로 날아갈 만큼 열정이 대단하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연구자의 길을 택한 건 아니었다. 6남4녀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대학에 진학한 형들을 대신해 20대 중반까지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었다. “군에서 제대하고 어떻게 하면 농사를 더 잘 지을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때 마침 방송대가 처음 생겼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낮에는 농사짓고 저녁엔 공부하며 학업을 마쳤다. 졸업 후 곧바로 충남대 대학원에 진학해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농촌진흥청에 들어가 쌀 연구를 시작했다. 이때 국내에서 개발된 ‘흑진주벼’에 안토시아닌이 포함된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 10여 년 연구 끝에 ‘흑진주벼’보다 안토시아닌이 10배 많은 ‘수퍼쌀’을 만들었다.

윤석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