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냉전시대로 뒷걸음|아프가니스탄 친소화의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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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시아」판 「체코」침공』으로 불리는 작년12월27일의 「아프가니스탄」 「쿠데타」는 「이란」인질사건으로 고조돼온 중동긴장에 덧붙여 중동·「아시아」정세에 또 하나의 회오리로 등장하고 있다. 대규모 소련군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에 성공한 「아프가니스탄」의 새 집권자 「바브레크·카르말」도 역시 친소정책을 분명히 했다.
축출된 「타라키」 「아민」정권과 별 차가 없는 「카르말」정권을 힘으로 내세운 소련이 이번 「쿠데타」를 전후해서 모두 4만5천명 수준의 병력을 「아프가니스탄」에 진주시키는가하면 5개 사단 5만명의 병력을 「아프가니스탄」·소련국경에 집결시키는 등 모두 10만 병력으로 무력시위를 벌임으로 해서 「이란」 「파키스탄」 등 인접국들은 물론 중동석유에 목숨을 건 서방국가들을 아연 긴장시키고 있다.
소련의 이 같은 군사개입은 1978년4월 「타라키」의 친소공산정권수립 이후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회교도들의 반정부무장반란이 「카불」정권을 붕괴직전으로 몰아가자 이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물론 그 배후에는 ▲소련국경에 접한 「아프가니스탄」을 완충국가로 확보하고 ▲「아프가니스탄」을 확보함으로써 인접 「이란」 「파키스탄」 중공에 대한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전략적 기선을 잡을 수 있고 ▲나아가 인도양으로 진출해 소련의 숙원인 부동항확보와 중동산 석유의 수송길목을 장악한다는 다목적 전략이 깔려있다. 거기에다 「아프가니스탄」의 친소공산정권이 붕괴하고 정통회교국가가 들어설 경우 소련의 「우즈벤」 등 회교도가 많은 소공화국들에 정치적 불안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그 화근을 미리 제거한다는 목적도 있다. 8천만 회교도를 갖고있는 소련은 「이란」의 회교혁명 이후 고조되고 있는 회교민족주의의 소련침투를 견제하는 이중적인 효과도 노리고 있다.
또 이번 군사개입은 80년대 석유부족위기를 맞은 소련이 「코메콘」 6개국에 공급하던 석유를 수출 중단하는 대신 「코메콘」국가들이 중동으로부터 석유를 사들일 수 있도록 분위기를 힘으로 조성한다는 단수 높은 대중동 압력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설명도 있다.
소련의 이 같은 군사행동은 미국은 물론 「나토」5개국과 「이란」 「파키스탄」과 중동의 대부분 「아랍」 국가들의 비난을 받고있다. 「유고」의 「티트」도 극히 조심스러우나마 소련의 처사에 대해 불만을 나타낼 정도다.
미국은 1월2일 「워트슨」 주소미국대사를 「워싱턴」으로 소환했으며 「쿠데타」 직후 지중해의 미제6함대의 「포리스톨」 항모(7만9천t)에 대해 인도양출동을 명령하는 등 이번 사태에 대해 초강경자세를 보이고 있다.
「나토」5개국도 80년 「모스크바·올림픽」을 「보이코트」하고 대소 경제적·문화적 교류중단 또는 감축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강경책을 검토 중이다.
특히 「아랍」회교도들의 반발은 극심해서 「뉴델리」의 소련대사관이 「아프가니스탄」 유학생들에 의해 점거되는 등 소련의 「아프가니스탄」군사개입은 많은 후유증을 낳고있다.
소련은 이 같은 반발을 완전히 묵살하고 「아프가니스탄」 회교반란군에 대한 철저한 소탕작전을 본격적으로 개시하고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침공이 언제 다시 「이란」이나 「파키스탄」으로 번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6일 「브라운」미국방장관의 중공방문에서 미·중공군사협력문제가 밀도를 가질 것이고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의 군사지원 강화로 「파키스탄」을 확실한 친미국가로 전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미국측의 이익도 적지 않다.
더우기 인질사건으로 곤경에 처했던 「카터」 미국대통령은 중동국가들의 대소감정악화와 인질사태에 대한 관심 저하로 인질사태를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특히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소말리아」 「케냐」 「오만」에 특사를 보내 10만 기동타격군의 창설에 따른 기지사용문제를 검토한 미국은 행동에 추진력을 갖게될 것이고 거론돼오던 인도양의 제5함대 창설문제도 쉽게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예상 밖의 이득을 얻을 가능성도 있다.
또 석유문제로 분열상을 보였던 서방의 석유수송로 보호라는 한 가지 이해관계로 단결하는 등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개입은 「이적햅위」였다는 비판도 있다.
영국의 일간 「더·타임즈」지는 『소련이 막대한 군사력을 동원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려 하지만 회교반란군들의 종교적 저항을 그렇게 쉽게 진압할 수는 없을 것이며 소련은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보다 더 불리한 입장에 놓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있다.
따라서 80년대 벽두를 장식할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소련의 대서방자원에 대한 위협과 대중공포위망 구축이라는 공격자세와 미·중공·중간국과 서방국 등의 자원보호 및 소련의 팽창주의 견제라는 방어자세가 어떤 선에서 이번 사태를 마무리지을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진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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