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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과 안정이 교차…각세기의 「80년」|내외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아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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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천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80년」은 변혁과 안정, 그리고 치세기와 전란기가 교차하는 해가 많았다. 특히 우리 역사에 있어 980년, 1380년, 1680년, 1880년은 전환기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가 통일한 후이며 이성계가 이조건국의 웅지를 품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또 이조후기의 당쟁이 그 절정에 이르른 것도 「80년」의 사건이었고 개항직후 외세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기 시작할 무렵도 80년이었다.
서양의 경우는 980년 「이탈리아」전쟁과 1780년 영국과 화란의 전쟁 등 대소의 전쟁이 일어났으며『「카라마조프」의 형제』「몽테뉴」의 수상록이 완성된 문화의 해이기도 하다.

<980년>
이해는 고려 경종5년으로 건국초기 체제정비를 이룩한 광종에서 성종으로 이어지는 치세기다. 이때 활약한 두드러진 인물 최승노 (927∼989).그는 2년 뒤인 982년 정치개혁방안으로 시무26조를 올린 것으로 이름높다.
이 상소문은 유교정치이념에 입각하여 고려국가의 정치를 개혁하고 그 지배체제를 정비하는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고대사회의 체질을 극복하고 중세사회질서를 확립하는 디딤돌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미 광종은 노비안검법을 실시하면서 호족세력을 견제했고 지배층의 체질개선을 위해 학문의 성적에 따라 관리를 뽑는 과거제도를 실시했다. 이로 말미암아 급격한 세대교체가 일어났고 이에 반발하는 호족들이 많이 도태되었다.

<1380년>
이해 9월 이성계는 운봉에서 왜를 대파했다.
이때부터 그는 최영과 함께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조건국의 웅지를 마음속에 품게 되었다. 이성계가 남북정벌로 이름을 떨칠 무렵 중국대륙의 청세는 크게 바뀌어 원이 쇠퇴하고 한족출신의 주원장이 명을 세웠다.
8년 후인 우왕 14년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최영은 요동정벌을 계획, 스스로 팔도도통사가 되고 조민수·이성계를 좌우도통사에 임명, 출정케 하였다. 이성계는 요동정벌의 불가함을 역설했으나 최영은 이를 거부했다. 이성계는 전쟁중지를 결심하고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개경으로 돌아와 우왕과 최영을 축출하는데 성공했다.
「쿠데타」에 성공한 그는 이후 신진 유학자들을 등에 업고 전제개혁 등 이조건국의 기반을 착착 다져나갔다.

<1680년>
올해와 같은 경신년인 이해 이조 당쟁사에 한 획을 긋는 「경신대출척」이라는 사건이 일어났다. 숙종 6년에 일어난 이 사건으로 남인일파는 대거 실각하여 정치의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고 이들은 재야에서 실학의 뜻을 펴기 시작했다.
1674년의 예론에서 승리. 정권을 잡은 남인들은 숙종으로부터 그다지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던 차, 당시의 영의정 허적이 왕의 미움을 사 더욱 남인들을 꺼리게 되었다. 이에 서인 중 김석위·김맹훈 등이 허적의 서자 허견이 갈창군 등을 내세워 역모한다고 고발, 옥사가 일어났다.
이로써 복창군 3형제와 허견은 물론, 허적과 윤전 등 남인일파가 모두 사사·파직·유배돼 서인이 모든 정치를 휘어 잡게된 계기가 됐다.

<1880년>
내년과 일어난 일들을 정리해보면 외세의 거센 물결이 1876년 개항과 함께 밀어닥치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
2월에 「러시아」이사관 「마추린」이 경흥부에 와 통상을 요구했고 3월에는 김홍집이 일본 수신사에 임명됐으며 같은 달 미 해군제독 「슈펠트」가 군함 「티콘데로가」호로 부산에 와서 통상을 청하고 있다. 또 7월에는 「이탈리아」군함이 원산에 닻을 내렸고 12월에는 인천의 개항이 결정됐다.
이후 청의 권고로 미국·「프랑스」등 여러 나라와 통상조약을 맺게되었는데 이는 일본의 진출을 막으려는 한 방법이었다. 이해 8월 김홍집이 일본에서 가져온 청인 황준헌의 『조선책략』이 이 같은 문호 개방에 촉진제가 되었다.

<외국의 80년>
980년 신성 「로마」황제「오토」2세가「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침입함으로써 시작된「이탈리아」전쟁은 3년을 끌었고 중세에서 근대로 접어들면서 각국사이의 분쟁은 끊일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신성 「로마」황제 「하인리히」4세의 파문(1080)이 종교와 정치간의 대립을 불러일으켰고 일본에서는「미나모또」(원뢰정)가 군사를 일으켜 재력을 잡았다(1180). 그리고 1380년에는 몽고의 「티무르」기 「페르시아」를 정복, 13년간의 몽고지배를 가져왔고 「모스크바」 대공 「이반」3세가 흠찰한국을 쳐 대반격을 개시한 것이 l480년의 일이었다.
16세기이후 항해술 발견 등 지리상의 확대는 「스페인-포르투갈」전쟁(1580) 「작센-프랑스」전쟁(1680) 「영국-네덜란드」전쟁(1780) 제국주의의 대두(1880) 등 80년은 전쟁의「징크스」를 갖고있는 듯하다. 새해는 전쟁 없는 한해가 되기를 빌어본다.

<방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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