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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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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윤보선(83·전대통령)
▲최규하대통령의 『시국에관한특별담화』발표후 현정부의 정국수습방안이 유신체제의 지속이라고 생각하고 현실불만자들을 규합, 불법집회를 실시, 전국적인 반정부시위로 발전, 통대에의한 보선을 저지할 목적으로,
▲79년11월8일 민주청년협의회원 조성우·이우회등 10여명과 본인집에서 민주회복 투쟁을 결의하였으며 그후 이우회에게 성명서발표등의 소극적 방법보다는 군중대회가 효과적이라고 종용하었으며,
▲국민연합회성명서를 발표하였으나 효과가 없자 본인집을 방문한 이우회에게 재차 군중대회를 결행하도록 종용하고,
▲전국회의원 양순식·박종태및 백기완등에게 가장결혼식으로 통대선출반대를 위한 군중대회에 참가할것을 적극 중용하는등 불법집회의 배후조종과 자금지원하였음.
◇함석헌(78·씨알소리사대표)
▲밀물출만사 대표 최민화로부터 11월24일 오후5시30분에 YWCA강당에서 결혼식을 가장한 통대보선저지집회를 개최하는데 강연을 하여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응낙하였으며,
▲그후 최민화를 다시 만나 재차 동집회에 참석할것을 요청받고 응낙후,
▲79년11월24일 오후5시30분 YWCA강당에 도착하였으며, 사회자 김정택으로부터 대회장으로 소개받고 일어서 답례후 참석.
◇양정식(54 전공화당국의의원)
▲79년11월11일 윤보선집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담화내용에 반대하는 성명서문안작성에 참여및 11월12일 성명발표현장에 참석한후,
▲79년11월12일 이미 윤보선으로부터 민청의 이우회를 도와주라는 지시를 받고 이우회에게 『군중대회를 추진함에 내이름이 필요하면 빌려주고 집회에도 가담할테니 잘연구해보라』고 격려,
▲79년11월17일 종로구관철동소재 모경양식집에서 박종태로부터 11월24일 명동YWCA강당에서 통대선출반대국민궐기대회의 집행위원장추대를 수락하고,
▲79년11월23일 윤보선비서로부터 명동집회권유및 조성우로부터 현경동지회측 준비위원10명 선출을 요청받고 즉석에서 10명의 명단을 제출하고 식대1만7천원지불.
▲준비위원으로 헌정동지회명단을 일방적으로 제출된후 본인을 대상으로 전원 승낙을 받고 집회에 참석.
◇박종태(60·전국회의원)
▲같은 노선의 구정치인 전국회의원 양정식·김윤식등을 규합, 소위 헌정동지회라는 단체를 구성, 반정부활동을 하던차,
▲79년11월12일 민주청년협의회 대표 조성우로부터 통대보선 저지집회 계획을 듣고 호응후 11월13일 종로소재 모 「살롱」에서 양순식에게 동집회에 참여하자고 제의,
▲79년11월12일 오전 이미 윤보선으로부터 민청의 이우회를 도와주라는 지시를 받고 이우회에게 『군중대회를 추진함에 있어 내이름이 필요하면 빌려주고 집회에도 가담할테니 잘 연구해보라』고 격려,
▲79년11월16일 조성우로부터 동집회의 실행위원장으로 추대받고 응낙하였으며, 양순식과상의, 추천자명단을 제공하였으며 대회장인 함석헌이 취지문을 낭독치 못할 경우 대신 낭독요청을 받고 응낙,
▲11월24일 동집회에 참가하여 취지문을 낭독하는등 적극적으로 주동.
◇임채정(40·동아투위)
▲백범사상연구소장 백기완으로부터 통대보선 저지집회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들은후 11월17일 동아투위 이석표로부터 동집회를 의하여 홍성엽과 윤정민양의 위장결혼식이 있다고 재차 들은후,
▲동일 종로구 소재 모경양식 집에서 박종태·양순식·김병걸등과 동집회에 대한 진행사항들을 토의하였고,
▲79년11월21일 이신범(백범사상연구소원)으로부터 집요대회장으로 추대받고 수락하였으며 동일 위장결혼식 청첩장 2장을 김병걸에게 전해주면서 문단인사 집행위원 선정을 요청,
▲79년11월23일 김병걸로부터 문단인사회원명단을 받아 김경택에게 전달하고 동일 박종태·양관수·김정택등과 동집회에 관하여 최종 토의후 이신범으로부터 당국에 피검시는 차후 활동을 위하여 조성우는 노출시키지 말고 이우회로부터 대회장을 추대받았다고 진술하라고 부탁받고,
▲79년11월24일 불법집회장에 참석및 집회를 주동.
◇백기완(47·백범사상연구소장)
▲금번 불법집회및 시위관련자 10여명과 접촉, 최대행의 시국담화문에 대응키 위한 국민연합성명서초안을 낭독하는등 불법5개단체와 결성, 통대반대투쟁을 유도하여 왔으며,
▲79년11월19일 윤보선으로부터 통대보선저지를 위해서 결혼식을 가장한 집회를 갖는다는 말을 들은후 동사실을 한동학등 4명에게 알리고 참석을 권유하였으며,
▲79년11월23일 조성우로 통대반대국민대의 준비집행위원장으로 결정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쾌히 승낙,
▲79년11월24일 YWCA불법집회 참석.
◇김병걸(54·자유실천문인협의회대표)
▲79변11월20일 동아투위임채정으로부터 청첩장 2장을 받고 YWCA불법집회모임에 동 문인협회 참석자 명단제출을 요구받자 이에 응낙한후 동일 간사 박태순및 이시영에게 등 집회가 있음을 연락하고 명단을 요구하여,
▲간사 박태순및 이시영이 가져온 참석자 명단을 임채정에게 전달하였고, 양관수 홍성엽 김정택 박종태등이 주최한 최종모의에 참석시 박종태로부터 본인이 통대보선 저지집회준비위원임을 알고 수락,
▲79년11월24일 YWCA집회에 가담.
◇이우회(25·민청회장)
▲79년11월10일 민주청년협의회 부위원장 최열을 대동하고 윤보선가를 방문, 윤보선으로 부터 『대통령권한대행의 발표문에 대해 11월12일 국민연합에서 반대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며 성명서같은 것만으로는 개헌및 민주화과정을 단축시키기 어려우니 군중 대회나 시위같은 행동을 통해 선출을 저지하라』는 지시를 받고 민주청년 협회전회장 조성우(30)외 6명의 핵심분자등과 회합, 통대보선저지·국민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의,
▲79년11월11일 민청협의회 간부 조성우 양관수 문국주 홍성엽 이석표 이명준외 12명과 회합, 민청협의회 확대간부회의 개최및 통대보선 저지집회를 개최하기로 최종결의하고 기독청년 협의회 간사 송진섭에게 한국기독청년협의회의측에서도 참가토록 권유.
▲79년11월12일 조성우·최열·문국주를 대동하고 윤보선가를 방문, 대통령권한대행의 발표문에 반대하는 성명서 발표에 참석한 다음 동집회는 청년들이 주도해야하니 그 방법을 연구해보라는 지시를 윤보선으로부터 받고 기독장로회서 남동, 해직교수 성내운·이우정, 자유실천 문인협의회 김병걸·염무옹·백낙청, 기독자교수협의회 김찬국, 동아언론 자유수호 투쟁위원회 이명주·이봉영, 조선언론투쟁위원회 정태기·백기범 등과 회합, 국민연합의 성명서를 5개단체 공동명의로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키로 결의, 성명서 기초위원으로 선정, 검토확정하고 80부를 등사해 윤보선및 5개단체대표등 참석자 30명에게 배포하였으며,
▲79년11월13일 성명서발표후 윤보선으로부터 어려운 시기인데 몸조심하라고 지시받고 경비로 10만원을 받아 홍성엽에게 8만원을 주면서 동집회를, 효과적으로 수행키위한 방법을 연구토록 지시하였고
▲79년11월15일 최열에게 대구·부산, 문국주에게 광주등지에 출장가 유인물전달및 지방조직을 점검토록 지시와 동시 여비를 지급하였으며,
▲홍성엽에게 지시, 공덕귀(윤보선처)로부터 활동비조로 20만원을 요구, 10만원을 받도록 하였고,
▲79년11월17일 송진섭·박종열·권진관등과 접촉, 동집회를 11월24일 혹은 25일 YWCA강당에서 결행키로 결정하고 학생및 교계인사 동원문제에 대하여 논의,
▲79년11월20일 문국주가 작성한 동집회 취지문, 거국내각 구성선언, 통대선출반대성명서등의 초안을 검토수정하였으며, 동 유인물제작, 시위시 사용할 「스피커」, 「플래카드」등의 준비를 지시하였고 최열·이석표·문국주등과 시위는 동집회장소에서 미도파 화신 광화문 중앙청에서 연좌 「데모」커로 결정,
▲79년11월24일 등집회에 참석, 미리 준비된 각종 유인물을 참석자에게 배포하였고 가두시위를 하는등 주동자로 활동,
◇김정택(한국기독청년협의회전국회장)
▲79년11월18일 박종열·이우회(민청협의회회장)등 13명이 회합하여 이우회로부터 통대보선저지 집회를 민청협의회와 기독청년협의회에서 준비하자는 제의에 응낙하고,
▲79년11월20일 기독청년협의회 간부들과 회합하고 민청협의회와 합동으로 동집회에 참가하기위한 기독청년협의회 운영위원회를 11월23일 개최 결정키로 모의하고,
▲79년11월22일 23시부터 11월23일 상오 3시께까지 강서구신월동소재 본인가에서 이상익·이우회·최열·조성우·문국주·이석표등과 회합하여 11월24일 17시30분 YWCA강당에서 동집회를 모의와 동시 조성우로부터 「프린트」대금으로 5만원 수수하고,
▲79년11월23일 기독청년회 임원인 이상익·권진관·김윤환등 16명이 회합하여 동집회에 참석토록 권유하여 동의를 얻고,
▲79년11월24일 17시25분께 YWCA강당에 도착, 집회사회자로서 동일17시25분께 통대보선저지 집회를 선언하고 대회장으로 함석헌을 소개하고 박종태로 하여금 취지문을 낭독케한후, 『통대선거 부정한다』 『부정부패자 일소하라』 『유정회·공화당은 물러가라』는 등의 구호로서 계속 군중을 선동.
◇박종렬(33·KSCF간사)
▲79년11월16일 이우회·권진관·문국주·김경남·송진섭등과 회합하고 이우회로부터 민청협의회와 기독청년협의회가 합동으로 통대보선 저지집회를 하자는 제의에 응낙 공모하고,
▲79년11월18일 김정택·이우회등 13명이 회합하여 동 이우회로부터 각단체에서 5명씩의 대표를 선출, 동 집회를 준비하자는 제의에 응낙 합의한후,
▲동집회준비에 필요한 자금으로 김정택에게 1만원, 이상익에게 5천원을 각각 제공하였음,
▲김찬국목사 김상근목사등을 만나 동집회의 실행위원으로 추대할 것을 제의하여 각각 응낙하고 이상익등을 만나 그명단을 알려주고,
▲79년11월24일 17시40분께 YWCA강당에서 개최된 통대보선저지 집회에 참석하는등 주도적활동.
◇권진관(27·한국기독청년협의회 전국연합회간사)
▲79년11월l6일 박종렬가에서 박종렬·이우회·문국주·김경남·송진섭등과 회합하고 위 이우회로부터 민청협의회와 기독청년협의회가 합동으로 통대보선 저지집회를 하자는 제의에 응낙공모하고,
기독교청년회 간부들과 회합하여 민청협의회와 공동으로 통대저지집회에 가담하기로 모의하는 일방 동집회준비를 위한 자금으로 1만9천원을 위 김정택에게 제공,
▲동 집회에 살포할 유인울로서 취지문, 통대보선저지를 위한 국민선언, 거국민주 내각 구성을 위한 성명서등을 등사하여 집회장으로 운반후 불법집회참가.
◇최열(30·민주청년협의회부회장)
▲79년11월14일 민청운영위원회의시참석, 통대보선저지집회 개척방안등을 토의후 문국주로부터 동집회시 이용할 예식장 예약금으로 5만원을 수수, YWCA예식장을 2만원에, 종로소재 서울예식장을 1만원에 각각 예약,
▲79년11월15일 대구및 부산 등지에 유인물을 전달키위하여 여비조로 2만원을 수수, 지방출장, 불온유인물 1백50장을 전달,
▲춘천지역 학생을 참석시키기 위하여 이병길(25)에게 1만4천원을 제공하였고,
▲79년11월24일 동집회및 시위시 사용할「스피커」구입등 적극적인 활동.
◇이상익(26·한국기독청년협의회 총무)
▲79년11월20일 옥호미상음식점에서 김정택 박종렬 권진관 권오성 오세구 등과 회합하여 민청협의회와 공동으로 통대보선저지집회에 기독청년협의회에도 적극가담하기로 모의하고. ▲79년11월22일 김정택등 6명이 YWCA강당에서 개최할 집회를 모의와 동시 조성우로부터등집회준비자금으로 1만원을 수수한후,
▲79년11월23일 신촌 「로터리」 대야성다방에서 김정택·권진관·박종렬 김윤환등 16명이 모인 기청운영위원회에서 통대보선저지집회에 가담키로 합의하고 ▲79년11월24일 기독청년협의회사무실에서 권진관·김윤환과 같이 민청협의회에서 인수한 취지문·선언문·성명서등 원고를 타자하여 등사후 YWCA강당으로 운반하고,
▲동일 오후5시30분경 백화점앞에 대기중, 오후6시경 집회장주변에서 경찰의 동향을 보고 집회가 제지된것을 직감하고 양관수와 같이 휴대한 확성기로,
『유신철폐』
『통대선거 반대』
『구속자 석방 복권등』 구호를 부르며, 군중1백여명을 선동 시위를 적극유도.
◇양관수(29·민청상임위부의장)
▲79년11월11일 전민청회장 조성우·이신범·홍성엽등 성명과같이 민청협의회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통대보선저지집회를 개최하기로 결의하였고
▲11월18일 최열로부터 동집회를 위한 활동비 5만원을 수수, 성종대에게 집회참가자 여비조로 3만원과 가장청첩장 20장을 전달,
▲11월20일 조성우로부터 11월24일 동집회종료후 가두시위시 진두 지휘하여 달라는 지시받고 승낙후,
▲11월24일 동 집회참가후 약1백50명이 운집한 「코스모스」백화점 앞에서부터 가두시위 선두에서 『통대반대』구호를 외치며 조흥은행본점앞까지 약3백m를 선두지휘하는등 주동적인 역할.
◇최민화(30·밀물출판사대표)
▲79년11월20일 서울종로구신문로 백범사상연구소사무실에서 동연구원이며 민주청년협의회 회원인 이신범(30)으로 부터 11월24일 YWCA강당에서 홍성엽 위장결혼식을 가장한 집회를 한다음 시위를 할 계획이니 참가할것과 함석헌에게 주례를 맡아달라고 연락하라는 요청을 받고 11월21일 함석헌에게 집회계획을 알려 참가권유,
▲79년11월23일 민주청년협의회 조성우(30)외 4명이 동집회에서 배포할 『통대선거반대, 유신잔당처단』을 골자로한 성명서초안을 검토하여준후 연대제적학생및 함석헌에게 연락해달라는 재요청을 받고 연대재적생 이대수(23)의 4명 재학생12명·함석헌에게 집회계획을 알려 참가권유,
▲79년11월23일 함석헌가를 방문하여 함석헌은 부터 먼저가라는 지시를 받고 동집회에 참가, 성명서낭독을 들은후 사회자 선창에 따라 『통대선거반대한다』고 복창하고 『오! 자유』라는 노법를 합창하고 집회에 참래한 군중 1백여명과 같이 「코스모스」백화점앞부터 광「까지「스크럼」을 짜고 불교시위.
◇강구철(26·민주청년협의회운영위원)
▲79년11월11일11시 민주청년협의회 간부인 조성우의 10명등이 모인 확대간부회의에 참석, 동협의회에서 결정한 통대보선저지집회 계획에 찬동,
▲YWCA예식장에서 신부측 접수대에서 집회참가자안내및 대회진행중 집행위원장 박종태가 선언문낭독시 이에 찬동, 박수를 쳤고 김정택이 선창하는 구호에 따라 제창및 시위참가하는등 적극동조
◇홍성엽(25·민주청년협의회 운영위원)
▲7911U월12일 국민연합성명서를 지지하는 5개단체연합의 성명서발표를 주도하였고 동일 이우회·문국주등과 통대보선저지대회를 개최키로 모의한후 동대회를 본인의 결혼식으로 가장 결행할 것을 결정,
▲인권위원회사무실에서 동집희 개최를 위한 활동비조로 공덕귀(윤보선처)로부터 10만원을 수수, 동집회준비를 위하여 사용하였고,
▲79년11월19일 동집회를 가장결혼식 안내장 5백장을 인쇄, KSCF및 NCC에 배포하였고 동집회에 가 신랑으로 가담하는등 주동적인 활동.
◇김윤환(31·대한예수교장로회 청년회전국회장)
▲79년11월23일17시30분경 이상익으로부터 11월24일17시30분 YWCA강당에서 결혼식을 위장하여 통대보선저지집회를 개최하는데 기독청년협의회대표 실행위원으로 3명이 나가게되어 김정택·이상익및 김윤환으로 하겠다는 제의를 받자 이에 동의하고,
▲79년11월24일 기독청년협의회 사무실에서 이상익·권진관, 미체포 유태선등과 같이 의동 집회에 살포할 유인물로서 취지문·통대보선저지를 위한 국민선언·거국민주내각구성을위한 성명서등 등사, 집회장으로 보낸후 불법집회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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