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C-TV 공모|「드라머」심사평|이상현 <방송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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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라지만 이 말이 잘 먹혀들지 않는 게 작금의 우리 TV 「드라머」 부문인 것 같다. 누구나 입만 열면 주제의식의 결여를· 냉소하고 진부한 소재를 매도하고 상투적인 전개를 힐난한다. 불만과 바람이 이 정도로 포화상태에 이르고 보면 어디선가 현역작가들을 버쩍 정신나게 할 선열한 재능이 터져 나올 만도 하기에 이번 역시 심사위원들은 거의 기도하는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지만 결과는 또 한번 깊은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총 응모 2백64편, 예심 40편, 본심 8편).
그런 중에서도 수사물에서 당선작이 나온 것은 이 방면에 재능이 부족한 실정에서 크게 경하할 일이다. 가작에 든 3편부터 심사 위원들의 소감을 모아보면 『빨치산』은 소재에 압박 당하여 통속적인 무조건 반공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자료조사에서 보인 작가의 성실한 자세를 샀던 것이고 『녹색의 환희』는 무의촌에 발생한「콜레라」를 퇴치하며 사랑이 익어 가는 한 수련의와 여선생의 얘긴데 주인공이 벽지에 정착하게 되는 동기와 과정, 곧 신념이 절실하게 그려지지 않은 탓으로 등뼈 없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인연보다 짙은 어둠 속의 살인』- 이 작품은 선창가 주막을 무대로 하여 수사물에서는 보기 드문 토속적인 정한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점은·작가의 귀중한 재능이지만 겉멋만이 너무 앞서있고 수사의 허술함이며 등장인물의 상관관계가 보다 견고하게 구축되었어야 할 것이다.
수사부문의 당선작 『바다의 침묵』은 대단히 숙달된 필치였다. 해저유물탐색을 구실로 밀수품 인양을 한다는 발상과 긴밀한 구성, 그리고 대사에서 보인 절제된 표현은 수준급이지만 쫓기는 자와 쫓는 자의 긴박감, 그리고 금괴를 둘러싼 인간욕망의 가열성이 보다 극명하게 그려져야겠고, 종말의 자백이 너무 순수해서 맥이 빠지는 점은 보완되었어야 할 것이다.
소재부문에서 두 편이 채택되었지만 거개가 너무 극화를 의식하여 작위적인「드라머」과잉이었거나 진부한 넋두리의 범람으로 보다 생활의 실상에서 건져 올린 진실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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