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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부터 여행 스케치 … '뿌리'는 나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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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난달 8일 토니상 시상식에서 린다 조가 의상상 트로피를 들고 서있다. 그가 입은 드레스는 결혼
식 때 입은 웨딩드레스를 리폼한 것. [AP=뉴시스]

올해 토니상 뮤지컬 부문 최우수 의상상은 ‘젠틀맨스 가이드 투 러브 앤 머더(A Gentleman’s Guide to Love & Murder)’의 한인 의상 디자이너 린다 조(42)씨에게 돌아갔다. 한인이 토니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1981년과 91년 의상상을 수상한 윌라 김씨 이후 처음이다. 조씨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작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를 뉴욕 맨해튼 에서 만났다.

 - 첫 브로드웨이 공연이었는데.

 “원래는 지역 극단에서 처음 선보였던 작품이었다. 친한 친구들과 지역 극단에서 작품하는 것과 뉴욕에서 일하는 건 전혀 달랐다. 관계자들에게 ‘브로드웨이에선 어떻게 하면 되나’ 물으니 ‘업그레이드 시키라’고 하더라. 가령 전에는 내가 직접 70달러짜리 신발을 사서 배우에게 신겼지만, 뉴욕에선 750달러를 들여 전문가를 고용하고 그가 그 배우에게 딱 맞는 신발을 만들게 한다.”

 - 가장 비싼 의상은 얼마인가.

 “복잡한 의상의 경우 한 벌에 1만2000달러가 들었다. 배우가 바뀌거나 원래 하던 배우가 살이 쪄서 새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도 있다. 그때마다 의상을 새로 만드느라 한 벌에 1만 달러 이상이 들었다.”

 서울에서 태어난 조씨는 생후 9개월 때 부모님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갔다. 그는 원래 과학고 를 나와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던 학생이었다. 대학에서는 심리학을 전공했다.

 - 뮤지컬 분야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 처음엔 캐나다 리퍼커션극단의 야외 공연 보조로 일을 하다가 의상 디자인을 하게 됐다. 그러다 예일대 드라마스쿨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만난 연출가 다코 트레스냑과 공동작업을 해왔다. ”

 예일대에 가게된 건 주변 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정작 본인은 자신이 없었다. 세트 디자인에도 능해야 하고 드로잉도 잘해야 할 것 같아서 지원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했던 인터뷰에서 담당 교수가 “드로잉도 엉망이고, 수채화는 최악이다. 그런데 뭔가 있다 ”며 즉석에서 입학을 결정했다. 교수가 본 것은 그가 12세 때부터 그렸던 여행일기 스케치북이었다.

 - 뭘 그렸던 스케치북이었는지.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렇게 다니면서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을 스케치북에 그렸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은 여행 중에 내가 갑자기 서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면 다 그릴 때까지 기다려주셨다. 왜인지는 몰라도 내게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아셨나 보다. 그 스케치북 몇 권을 인터뷰 때 가방에 넣어 가져갔는데, 그걸로 합격이 된 셈이다. 나중에 보니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많이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고, 여행을 하고, 시각을 넓히라는 주문을 하더라.”

 - 공연계에서는 아직도 아시안이 소수인데.

 “나이가 들수록 내 정체성이 얼마나 독특하고 특별한지 알게 된다. 내 피에 한국이 있다. 남편은 백인인데, ‘백인의 문화 유산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스코틀랜드 조금, 영국 조금, 여기저기…’라고 대답한다. ‘이것이 너의 뿌리다’라고 할 것이 별로 없다. 정체성은 힘 있는 자산이다.”

 - 시상식에서 입은 초록색 드레스가 한국 느낌을 담은 것처럼 보였다.

 “웨딩드레스였다. 초록색 계통을 좋아해서 연두색 드레스를 입고 결혼했다. 드레스를 보고 다들 ‘한국식’이냐고 묻더라. 아마도 무의식중에 한국 느낌이 나타났나 보다. 앞으로는 의식적으로 한국적인 요소들을 녹여내고 싶다.”

뉴욕중앙일보 이주사랑 기자 jsrle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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