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복장 터질 듯 갑갑한 세상,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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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문학과지성사, 336쪽
1만3000원

‘어떤 완벽한 대답도, 질문자가 원하는 것이 완벽한 대답이 아닐 때는 질문자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 질문자가 원하는 것이 완벽한 대답, 그러니까 진실이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확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인정일 때는, 그 말을 들을 때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단편 ‘하지 않은 일’ 중)

 소설 속 이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격하게 공감했다. 사건이나 현상과 관련해 대중이 알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은 사실 혹은 진실이 아니라 ‘항복’이라는 이 말은 오늘의 우리가 직면한 마녀사냥식의 신상털기와 몰아가기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승우의 아홉 번째 소설집인 이 책에는 2010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칼’ 등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렸다. 소설집의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신중한’ 이들로 가득한 책은 무겁다. 독자의 복장은 터질 지경이다. 신중한 주인공들은 억지와 불합리가 가득한 세상에 쩔쩔매고, 그들의 특징을 드러내듯 어미만 달리하며 비슷한 문장 구조를 되풀이하는 과잉기술은 답답함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문제를 악화하는 것은 이 신중하고 소심한 이들이다. 그들은 ‘억지와 불합리와 막무가내를 거북해하고 못 견뎌 하면서도 그것을 견뎌내지 못할 때 닥쳐올 또 다른, 어쩌면 더 클 수도 있는 억지와 불합리와 막무가내에 대한 예감 때문’에 그런 상황을 받아들인다. 사태의 개선이나 해결은 남의 이야기다. 해외 파견 근무를 떠나며 이웃에게 전원주택의 관리를 맡겼다가 사기 임대차 계약에 휘말려 자기 집에 월세를 주고 사는 주인이 딱 그런 꼴이다.(표제작 ‘신중한 사람’)

 ‘사람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단편 ‘하지 않은 일’은 표절 시비에 휘말렸던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담을 연상케 하는 동시에 총리 후보자의 연이은 낙마 사건까지 의사 소통의 불능에 빠진 우리 시대를 비추는 거울 같다. ‘진실은 받아들여지기가 어렵다. 사람은 잘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다른 사람의 진심을 믿기가 믿지 않기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는 말이 그래서 더 와닿는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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