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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가 뭐 별거가 … '갈매기 밴드' 돌아왔다 아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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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부산의 밤이 노래한다. 요즘 해운대와 광안리 해변에선 하루도 쉬지 않고 길거리 공연이 펼쳐진다. 지난달 광안리 임시무대에서 바다를 등지고 노래하고 있는 보컬팀 ‘사운드 팔렛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부산 인디 음악계가 꿈틀거리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부활’ ‘고무적 변화’ ‘저변 확대’란 표현이 잇따른다. 무조건 서울로 향하던 뮤지션들도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현재 부산을 연고로 활동하는 팀은 60여 개. 부산 펑크 밴드, 옐로로코의 노래 ‘락앤롤이 뭐 별거가’를 조금 비튼다면 ‘서울이 뭐 별거가’쯤 되겠다. 지난달 부산에서 만난 부산 출신 인디밴드 1세대 ‘앤(Ann)’의 보컬 장현정씨는 “현재 부산은 원점에서 판이 재정비되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정의했다.

 장면 1. 우선 부산발(發) 앨범 풍년이다. “최근 2년 동안 부산에서 발매된 앨범이 그 이전 10년간 나온 앨범보다 많다”(김종군 부산 민락인디트레이닝센터장)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인부터 10년 이상 부산을 지켜온 밴드까지 잇따라 부산색(色)이 물씬 풍기는 앨범을 내고 있다. 이 두 곡의 가사를 보자.

 “담배 피고(피우고) 술 처먹고 욕이나 하고 쌈박질하고 고함 지르면 펑크 락커가/락앤롤이 뭐 별거가/펑크는 정신이고 마인드라메/뭐라고 씨부리노 왈왈왈왈/내가 펑크라면 펑크인기라/나는 비록 선원일지라도 큰 배의 돛이 돼가 헤엄칠끼다.”(옐로로코의 ‘락앤롤이 뭐 별거가’의 일부)

 “당신이 이혼녀라 할지라도 난 좋아요/가진 게 에이즈뿐이라도 문제없어요/그게 나의 마음/당신이 진심으로 원한다면/담배뿐 아니라 락앤롤도 끊겠어요/15번 버스 타고 특수용접 학원에도/지하철 타고 대학 입시 학원에도 다닐 거예요/그대가 날 사랑해준다면”(김일두의 ‘문제없어요’의 일부)

 ‘락앤롤이 뭐 별거가’는 부산 연고 10개 팀이 참여한 컴필레이션 앨범 ‘특별시 부산’(2013)에 실렸다. 하드록의 성지였던 부산색을 잇겠다는 포부가 느껴진다. 두 번째 곡 ‘문제없어요’는 부산 출신 뮤지션 김일두의 대표곡이다. ‘부산 싸나이’ 특유의 무뚝뚝한 순정을 잘 담아낸 노래로 주목을 받았다.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지난달 열린 인디문화축제 ‘민락페스타’. 1 밴드 ‘매닉시브’의 보컬 오나은. 2 매닉시브의 드러머 이완기. 3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밴드 ‘마라’의 정현석. [사진작가 이기태]

 장면 2. 공간의 부활이다. 1년 전 민락동 지하철 역사 안에 인디트레이닝센터가 문을 열었다. 부산문화재단이 청년문화 육성의 일환으로 시작한 사업이다. 이곳에선 30개의 입주팀이 번갈아 밴드 합주실 을 이용한다. 앨범을 낼 때도 지원을 받는데 현재 6개의 앨범이 나왔고, 올 연말까지 10개를 채울 계획이다. 라이브 클럽도 부산대 인근에 속속 들어서고 있다. 한 장의 티켓으로 여러 클럽을 돌며 라이브 공연을 즐기는 ‘클럽투어’도 부활했다. 서울팀이 주로 공연하던 현대카드 부산 파이낸스샵은 지난달부터 부산팀도 공연한다.

 장면 3. 버스킹(busking·길거리 공연)의 유행이다. 최근 광안리와 해운대는 버스킹의 천국이 됐다. 실용음악과 학생부터 프로 팀까지 기타와 젬베(아프리카 북의 일종)만 있으면 새벽까지 공연을 이어간다. 지난달 25일, 광안리 해변에선 부산 보컬팀 ‘사운드 팔렛트’의 공연이 있었다. 리더 최진우(23)씨는 “광안리는 하루 4~5팀 정도 구청에 신고를 하고 공연을 할 수 있는데 성수기엔 예약도 힘들다”고 했다. SNS를 통해 버스킹 연합이 자생적으로 꾸려지면서 지자체마다 지하철역이나 대학가에 버스킹 공간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돌아온 ‘갈매기 공화국’=부산은 1980~90년대 하드록과 헤비메탈의 성지였다. 배로 두 시간 거리인 일본으로부터 서구 음악이 일찍부터 쏟아졌고, 부산 사람들의 화끈한 성정과 센 음악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부산 밴드인 피아, 에브리싱글데이, 레이니썬 등이 ‘갈매기 공화국’이란 프로젝트로 서울 입성을 시도했고, 성공을 거뒀다. 부산 출신 연주자들은 오디션도 보지 않고 뽑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점차 인디 음악의 중심은 홍대로 옮겨가고 있었고, 2000년대 부산은 암흑기를 맞는다.

 최근 부산에서 만난 뮤지션들은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신화는 깨졌다고 입을 모았다. 직업과 삶의 터전을 포기하고 상경했던 선배들의 실패를 본 것이다. 이제 후배들은 성공보다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을 꿈꾸고 있었다. 스카밴드 스카웨이커스의 드러머 이광혁씨는 “서울로 간 선배들이 먹고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거나 다시 돌아오는 경우를 많이 봤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출세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려면 사는 곳에서 기반을 닦는 게 옳다고 봤다”고 말했다.

마라의 베이시스트 이정희. [사진작가 이기태]

 자연히 ‘메이드 인 부산’을 좋은 브랜드로 만들자는 움직임도 생겼다. 한국형 블루스의 새로운 장을 연 김태춘과 김일두가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은 것이 대표적 성과다. 부산 음악계의 붐업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변방의 북소리-갈매기 공화국 리턴즈’(가제)를 찍고 있는 방호정 감독은 부산팀의 특징을 ‘남의 눈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으로 꼽는다. 방 감독은 “영미권만 보더라도 로컬 음악계의 색깔이 굉장히 강하지 않나. 유행에 민감해 점점 평준화되는 서울 음악계의 대안으로 매체나 평론가들이 지역을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환경적 변화도 한몫 했다. KTX로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됐고, SNS나 유튜브를 통해 누구나 홍보를 할 수 있다. 음반에서 디지털 음원으로, 방송에서 행사 중심으로 활동 영역이 옮겨간 것도 주효했다. 록밴드 ‘과매기’의 경우 평소엔 부산에서 생활하다 기차나 차를 타고 전국 공연을 돈다. 배로 두 시간 거리인 일본으로 원정 공연을 가기도 쉽다. 과매기의 보컬 배진수씨는 “예전부터 부산은 후쿠오카를 비롯해 해외 팀과 교류가 활발했다”며 “해외 밴드의 한국 활동을 돕는 아시아 프로모터도 하고 있는데 부산이 해외 교류의 거점으로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여기에 민락인디트레이닝센터를 비롯한 관(官)의 지원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엔 부산의 문화 소외 지역인 사상구에 사상인디스테이션이 건립됐다.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이었다. 이곳에선 부산 힙합팀과 밴드의 공연이 정기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탄탄한 지역 무대를 꿈꾼다=아직 갈 길은 멀다. 더 많은 관객을 모으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부산에서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민들에게 부산에도 음악판이 존재하고, 꾸준히 앨범이 나오고 공연을 올린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적으로 홍보를 하고, 관객이 흥미를 느낄 만한 공연을 기획할 인력도 필요하다.

 가깝게 일본, 멀리는 미국만 하더라도 로컬 음악계가 활발하게 돌아간다. 일본은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아이돌이 있을 정도다. 그것이 또 국가 전체의 문화를 풍부하게 만들고 있음은 물론이다. 부산에서 문화기획자로도 활동하는 장현정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여행할 때 지역 음악계의 이상적인 모델을 봤다.

 “세계적인 밴드 ‘레드핫칠리페퍼스’가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를 돌면서 공연 포스터를 붙이고 다니더라고요. 세계 투어를 할 수 있는 대단한 밴드지만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잃지 않는 거죠. 고향의 작은 클럽에서 수십 명을 앞에 두고 노래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어요. 부산도 그렇게 되길 바라죠.”

[S BOX] 음악 낙원 꿈꾸며 … 앨범 이름 ‘동백락원’ ‘특별시 부산’

“우리가 남이가.” 부산에서 만난 이 지역 연고팀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지난겨울 나온 두 장의 컴필레이션 앨범 ‘특별시 부산’과 ‘동백락원’은 부산 팀들의 끈끈한 동지애가 담겨 있다. 부산을 또 다른 메인스트림으로 만들겠다는 ‘특별시 부산’은 이효리 5집에 참여해 이름을 알린 김태춘을 비롯해 김일두, 펑크밴드 Stoned, 감성듀오 부산아들 등 10팀이 참여했다. 과매기, 피버독스, 매닉시브, 올 아이 해브 등 록밴드 10팀이 참여한 ‘동백락원’은 헤비메탈과 하드록의 성지였던 부산의 정통성을 잇는다. 앨범을 기획한 밴드 판다즈의 방현구씨는 “동백꽃이 부산시화라 ‘동백꽃이 피는 음악 낙원’이란 의미를 담았다. 지금 부산에서 가장 열심히 활동하는 팀들을 만날 수 있는 앨범”이라고 전했다.

  이달 초 나온 8인조 스카밴드 ‘스카웨이커스’의 첫 번째 정규앨범 ‘Riddim of Revolt(저항의 리듬·Riddim은 rhythm의 자메이카식 방언)’도 주목하자. 자메이카 리듬을 한국적 정서로 풀어낸 실력파 밴드가 데뷔 8년 만에 21곡을 묶어 냈다. 지난달 발매한 과매기의 새 앨범 ‘컨빅션’도 있다. 메탈과 하드코어의 집대성이라고 부를 만큼 강력한 사운드를 추구한다.

부산=김효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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