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흑구문학상 대상 받은 남호탁 예일병원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0면

남호탁 천안 예일병원장은 병원에서도 틈 나는 대로 독서를 한다. 의학 서적뿐 아니라 인문학 책을 많이 읽는다. 채원상 기자

얼마 전 경북 포항시 호미곶에서 열린 제6회 흑구문학상 시상식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기성작가만을 대상으로 한 본상 부문에서 남호탁(52) 천안 예일병원 원장이 수필 ‘촌지 삼천원’으로 대상을 받은 것이다. 본상 부문엔 180여 편이 응모했다. 의사이자 작가로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남 원장을 만나 수상 소감과 일상에서의 글쓰기에 대해 들었다.

신영현 객원기자 young0828@hanmail.net
사진=채원상 기자

“예전에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글이 좋은 글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문학을 잘 모르는 사람의 마음도 울리는 아름다운 글이 진짜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죠. 살다 보니 아주 대단하고 아름다운 가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눈으로 사소하고 아주 작은 일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사람이 진정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난달 14일 출근 준비를 하다 호미곶에서 걸려온 수상 전화를 받은 남 원장은 “환자들과 만나며 겪은 일상의 소박한 이야기를 썼을 뿐인데 생각하지 못한 행운이 찾아왔다”며 쑥스러운 듯 소감을 말했다.

그는 천안시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예일병원(천안시 쌍용동) 원장이다. 의학박사이면서 2008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해 『똥꼬의사』 『외과의사 남호탁의 똥꼬이야기』 『수면내시경과 붕어빵』 『가끔은 나도 망가지길 꿈꾼다』 같은 수필집을 출간했다. 대부분 자신의 일상과 진료한 환자와의 에피소드를 담은 책이다.

 천안수필문학회 회장을 맡을 만큼 중견 수필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의 글쓰기는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남 원장은 “의과대 학생 때부터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다고나 할까요. 학창 시절 실습부터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치며 환자들의 삶과 죽음을 늘 함께 겪어야 하는 병원에서 글쓰기야말로 나를 위한 위로이자 작은 휴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며 “그렇게 시작된 습관이 병원 개원 후 본격적인 취미로 이어져 여러 잡지에 기고하게 됐고, 당시 알게 된 한 잡지의 작가와는 지금까지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자신의 습작을 눈여겨본 한 작가의 격려와 출간 권유로 다듬은 글을 본 서울의 한 출판사가 신인작가로는 드문 정식 인세 계약을 제의했다. 이렇게 해서 첫 수필집 『똥꼬의사』가 출간됐다. 지금까지 그가 펴낸 네 권의 책과 수상작 ‘촌지 삼천원’까지 대부분의 작품은 그에게는 가장 평범한 일상이라 할 수 있는 병원과 그곳에서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병원은 두렵고 멀게 느껴지는 공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소재의 독특함을 넘어 세상과 환자를 보는 그의 따뜻한 시선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절박한 공간인 병원마저도 사람 사는 포근한 곳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그가 충북 음성군의 한 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 만난 셋째 아이를 출산하러 온 며느리와 늙은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수상작의 마지막 줄은 읽는 이의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치밀한 작품 구성 호평

수필가 흑구 한세광(1909~79) 선생의 뜻을 기리고 국내외 문학 인재 발굴을 위해 제정된 흑구문학상은 그동안 주로 70대 이상 기성작가들에게 본상을, 신진작가들에게는 신인상을 수여했다.

하지만 흑구문학상 제정위원회(회장 서상은)는 올해 대상을 50대 초반인 남 원장에게 수여했다. 심사위원들은 남 원장의 수상작에 대해 ‘문장이 한결같이 탄탄하고 구성 또한 치밀해 대상으로 손색없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작가는 환자의 몸과 마음을 읽듯 세상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같이 날로 각박해지는 세태일수록 수필은 더욱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의 일상 모든 것이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있는데도 정작 우리에게 그걸 볼 수 있는 눈이 없을 뿐입니다. 작지만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작가가 할 일이겠죠.”

 남 원장은 퇴근 후 여유 있는 날엔 집에서 새벽까지 생각날 때마다 일상의 에피소드를 스마트폰에 메모하며 습작을 계속한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바쁜 병원에서도 의학서적과 함께 다양한 인문학 책을 챙겨 읽는다는 그는 최근 마르셀 프루스트에 푹 빠졌다.

“마치 평생에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기분입니다. 프루스트를 만나기 전과는 아예 문학관이 달라졌다고나 할까요. 내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글, 그저 문학 자체로서 가치 있고 진짜 아름다운 그런 글을 써보는 것이 앞으로 꿈이자 계획입니다.”

남호탁 원장 약력

1963년 서울 출생
의학박사·수필가
천안 예일병원 원장
천안수필문학회 회장
한국의사수필가협회 정회원
한국문인협회 정회원

수상 실적
신곡문학상 수상, 흑구문학상 수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