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거울 보는 남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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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회사원 하지환(30·영등포구당산동)씨는 출근할 때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색깔이 있어 피부 잡티를 커버해주는 BB(비비)크림을 챙겨 바른다. 최근엔 1분 클렌징으로 모공과 블랙 헤드, 각질을 줄여준다는 남성용 진동 클렌저도 새로 구입했다. “색조화장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제대로 된 클렌징이 피부에 좋을 것 같아서”다. 일주일에 한번 코팩을 해서 콧등 모공을 관리해주는 것은 물론, 에센스 등 기능성 제품도 기능과 성분을 꼼꼼히 확인해 구입한다.

 엄마·누나의 화장대에 있는 화장품을 아무거나 바르던 남자들이 달라지고 있다. 스킨·로션만 있던 남성 화장품도 전문화·세분화 되는 추세가 뚜렷하다.

 필립스는 지난 3월 남성용 진동클렌저 ‘비자퓨어 맨’을 세계 최초로 한국에 출시했다. 글로벌 조사기관 블라웨 조사결과 뷰티기기에 대해 한국 남성 66%가 “사용해보고 싶다”고 답한 반면 영국 남성은 절반만 그렇다고 답하는 등 한국 남성들의 뷰티에 대한 관심이 유독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필립스 박선영 홍보이사는 “비자퓨어 맨은 한달 만에 여성용 ‘비자퓨어’가 출시 한 달간 판매된 수량의 7배가 팔렸다”며 “글로벌 본사에서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비자퓨어 맨은 한국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최근엔 프랑스에서도 출시됐고, 다른 국가에서도 출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남성 전용으로 만든 음파 치아관리기 필립스 소닉케어 ‘다이아몬드클린 블랙 에디션’도 출시 후 품절돼 몇 차례나 재입고 시켰다. 박 이사는 “욕실에서 면도기를 쓰는데 익숙한 남성들이 다른 뷰티 기기구매에도 적극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1 필립스 남성용 진동클렌저 ‘비자퓨어 맨’ 2 아이오페 맨 ‘에어쿠션’ 3 라네즈 옴므 ‘쿨비비크림’ 4 필립스 남성용 음파 치아관리기 ‘소닉케어 다이아몬드클린 블랙 에디션’ 5 베르사체 남성용 향수 ‘에로스’ 6 LG생활건강 까쉐 ‘아이테라피 롤러’

 스킨과 로션 같은 간단한 제품이 주였던 남성 화장품도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 거울을 보며 퍼프로 색조 화장품을 찍어 바르는 남성들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아이오페 맨은 여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에어쿠션’을 지난 2월 남성용으로 출시했다. 지난해의 일반 자외선차단 제품에 비해 3배나 잘 팔리고 있다. 아이오페 브랜드 매니저 송진아 팀장은 “여자들처럼 퍼프로 색조 화장품을 찍어 바르는데 대한 거부감보다는, 손을 안쓰고 바르는 것에 편리함을 느낀 남성들이 더 많아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LG생활건강의 남성화장품 브랜드 ‘까쉐’는 제품 용기에 롤러 볼을 넣은 눈가 전용 화장품 ‘아이테라피 롤러’를 최근 출시했다. 여자들만 쓸 것 같은 한방 화장품도 남성용이 나왔다. 남성과 여성 피부에 적합한 한방 성분이 따로 있다는데 착안해 생맥산·백금·정향 등을 넣은 ‘후 공진향 군’ 라인이다.

 시세이도 남성화장품 맨은 아이크림·영양크림 등 안티에이징 제품으로 최근 제품군을 확 넓혔다. ‘레옹족(외모에 신경 쓰는 일본 중년 남성)’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에선 한국에 비해 남성 관련 제품 시장이 일찍 발달해 있어 10년 전 남성 라인을 내놨는데, 이들 제품군 대부분을 한국에 들여온 것이다. 맨 라인 전체 매출은 지난해 대비 10% 늘었고, 안티에이징 라인의 비중이 전체중 92%를 차지한다.

시세이도 홍보팀 전현정 과장은 “눈에 띄는 주름이나 쳐진 피부를 진한 메이크업으로 커버할 수 없는 4050 남성들이 안티에이징 제품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여성들만 쓰던 다이어트 바디라인 제품도 남성용이 나왔다. 랩 시리즈(Lab Series)의 ‘에이브 레스큐 바디 스컬핑 젤’은 운동후 바르면 복근 단련및 강화에 도움을 준다고 랩 측은 설명했다.

 피부관리와 미용에 대해 높아진 남성들의 관심은 ‘남성 전용 그루밍숍’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7층의 남성용 고급 헤어살롱 ‘꾸아퍼스트 옴므’는 주말이면 머리를 다듬으려는 남자들로 북적된다. 애초엔 여성을 따라 쇼핑 온 남성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차원에서 만든 것이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당초 목표 5000만원보다 2배 높은 한달 1억원의 매출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리뉴얼땐 무역센터 7층엔 남성 화장품만 따로 모아놓은 남성 화장품 전문 편집숍 ‘맨카인드’도 생겼다. 현대백화점 측은 “스킨케어 뿐 아니라 헤어스타일링 제품, 바디제품, 향수까지 모아놓고 파는데 한달 매출 2500만원 정도로 예상 목표보다 20%나 잘 나온다”고 전했다.

 옥션에서는 최근 한 달 기준 남성 화장품의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60% 증가했다. 남성전용 클렌징 제품은 지난해보다 95%, 색조메이크업은 65% 더 많이 팔리고 있다. 네일아트·페디큐어 제품 판매도 지난해보다 45% 증가했다. 네일아트 품목 중에서도 네일케어 세트는 지난해보다 350%, 손톱강화제·영양제는 145% 지난해보다 폭발적으로 매출이 신장했다. 손톱 정리를 하고 싶지만 네일숍까지 가는 것은 부담스러운 남성들이 셀프 관리 상품을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발표된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 조사에서도 한국 남성의 1인당 스킨케어 지출이 세계 1위로 나타났다. 한국 남성의 1인당 소비규모는 25달러30센트(약 2만5600원)로 2위인 덴마크의 3배에 달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가수 비와 같은 유명 연예인들이 광고에 출연하며 한국 남성 뷰티 시장의 확대를 유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LG생활건강 CM프레스티지 마케팅 부문 박성원 부문장은 “불황 속에서도 외모에 투자하는 남성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이들의 요구에 맞춰 세분화·전문화한 제품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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