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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탐사 5년 단축은 무리 … 우주계획 아닌 우주쇼 우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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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왼쪽)가 2008년 4월 카자흐스탄 우주기지에서 소유스 TMA-12 우주선에 탑승하기 직전 손을 흔들고 있다. [중앙포토]

“2020년 달에 태극기가 펄럭이게 하겠습니다.”

2012년 12월 16일 대선 후보 3차 TV토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색다른 공약을 내놨다. “달에는 바람이 거의 없어 태극기를 꽂는다 해도 펄럭이지는 않을 것”이라며 엉뚱한 시비를 거는 이들이 등장했지만, 어찌 됐든 이 발언으로 달 탐사 계획에 속도가 붙었다. 박 대통령 당선 뒤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2025년으로 계획된 무인 달 탐사선 발사를 5년 앞당겨 2020년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 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생겨난 미래창조과학부는 2020년 안을 확정했다.

2011년에 만들어진 당초의 안은 2018년 한국형 발사체(KSLV-2) 실험 발사, 2020년 10월과 2021년 9월에 위성 탑재한 KSLV-2 발사, 2023년 달 주위를 도는 궤도선 발사, 2025년 무인 달 착륙선 발사였다. 이 계획이 5년 당겨지면서 발사체 개발은 2017년 실험 발사, 2019년 12월과 2020년 6월 정식 발사로 바뀌었다. 이렇게 발사체 개발이 완성되면 그 뒤 6개월 안에 달 궤도선과 달 착륙선을 KSLV-2에 얹어 잇따라 쏜다는 게 현재의 로드맵이다. 이대로 실현되면 2020년 6월부터 그해 말까지 ‘대한민국 우주쇼’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항공우주 학계에서는 실현 가능성에 대한 진단이 엇갈린다. 김승조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원장은 “예산만 확보되면 어려울 게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장영근 한국항공대 항공우주기계공학과 교수는 “중국에서 발사체 완성에서 달 착륙선 발사까지 5년이 걸렸다. 이 작업을 6개월 사이에 끝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가능 여부를 떠나 ‘달 탐사’ 계획에 근본적 의문을 던지는 학자도 있다. 서강대 이덕환(과학커뮤니케이션 전공) 교수는 “달에 간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미국이 1970년대에 가 본 뒤로 지금은 안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항공우주 분야 개발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그랜드 플랜’ 없이 임기응변식으로 정책이 추진되는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미래부와 항우연에 의해 주도되는 현재의 우주개발 정책에 비판적인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구체적인 중장기 계획이 없고 전시성 이벤트에 치중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36)씨를 둘러싼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불거진 사안으로 진단한다.

한 국내 언론은 최근 이씨가 곧 항우연에 사표를 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먹튀’ ‘260억원짜리 우주관광’ 등의 원색적 비난까지 쏟아졌다. 이씨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항우연은 사표가 제출되지는 않았다고 밝히면서도 이씨의 사직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2006년 3만6000여 명의 지원자 중에서 우주인으로 선발된 이씨는 2008년 4월 러시아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에 가 열흘간 머물면서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여기에까지 약 26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그는 2012년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먹튀 논란은 이때 시작됐다.

“이씨가 무슨 죄를 졌다고 아무 일도 시키지 않는 항우연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나.” 이덕환 교수는 “이씨의 진로 선택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선발 때 우주인 활용에 대한 장기적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이씨가 우주에 다녀온 뒤에 맡을 역할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2004년에 우주인 선발 계획을 만든 전직 고위 관료 A씨도 “ISS 참여 등 여러 안이 있었지만 확정된 계획은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은 2000년대 초 미국항공우주국(NASA)으로부터 2억 달러를 내고 ISS에 모듈(우주실험실)을 설치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한국 정부는 예산 문제 때문에 이를 수락할 수 없었다. 미래부가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우주개발 중장기 계획’을 보면 최소한 2040년까지는 우주인 육성 계획이 없다. 2020년에 계획된 달 탐사선도 무인용이다. 이씨의 우주인 체험이 현실적으로 쓰일 곳이 없다는 얘기다. 이씨는 2008년 ISS에 다녀온 뒤부터 2012년 미국으로 떠날 때까지 전국 각지에서 대중 강연을 했다. 4년간 총 235회였다. 6일에 한번 수준이었다. 그는 2010년까지 2년 동안 자신의 우주 경험을 상세한 기록으로 만들어 놓았다. 언제가 될지 기약은 없지만 제 2의 우주인 탄생에 대비한 작업이었다.

현재 한국의 우주개발은 발사체와 위성에 집중돼 있다. 로켓 개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연구와 관련 있다. 위성은 수출에 방점이 찍혀 있다. 위성 개발과 발사는 정부 계획에 ‘미래 성장동력 창출 및 창조경제 실현 기여’로 의미가 풀이돼 있다. 그런데 기업들의 참여는 보이지 않는다.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부는 대기업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고 산학 협력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우주개발에 대한 ‘그랜드 디자인’을 하려면 기업의 얘기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우주항공 정책을 연구한 김 교수는 “대기업들도 수익성만 따지지 말고 국가를 위한 ‘보답성 투자와 참여’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주개발에는 많은 돈이 든다. KSLV-2 개발에만 약 2조원이 든다. 정부와 항우연은 산업 연계 효과와 부수적 기술 발달로 국가 경제에 그 이상의 기여를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장영근 교수는 “늘 산업화 얘기를 하지만 실제로 이뤄진 것은 거의 없다. 작은 위성 하나 수출한 게 실적의 거의 전부인데, 그나마도 항우연과 관계없는 민간 업체가 이룬 성과”라고 말했다. 그는 “개발 예산 확보에 욕심내는 연구자들의 과대 포장된 계획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언·이동현 기자 joo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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