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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해식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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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손님 『이봐요! 음식이 왜 이래? 지배인 좀 불러와요.』「웨이터」 『네, 지배인은 지금 건너편 식당에서 식사중이십니다.』『설마…』싶은 익살이지만 요즈음은 더러 공감이 간다. 식도락은 둘째치고, 도대체 꺼림칙하지 않는 음식이 우리 주위엔 별로 없는 것 같다.
식당을「레스토랑」이라고 하는데는 유래가 있다. 1766년「부랑제」라는 「쿠크」가 「파리」에서 처음으로 공중식당을 개업하면서 간판에다 신약성서의 한 구절을 써 붙였단다.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는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오라. 그대들을 쉬게 하리니]이 구절 속의 「레스트레스」 (쉰다)란 말이 이 식당을「레스토랑」이라고 부르게 했다.
글쎄, 요즘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하긴 식당이 문제가 아니라 음식물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공해·환경파괴의 문제는 이제 어느 한 지역에 한정된 일이 아닌 것 같다. 어느 생태학자의 보고에 따르면 남극의「펭귄」으로부터 DDT가 검출된 일이 있었다. 역시 이곳의 고래 속에서도 PCB(암벽천가제)가 나왔다. 북극의 얼음 속에서도 연이 검출되었다는 보고는 더욱 놀랍다. 지구의 구석구석, 어느 한 곳도 공해에 물들지 않은 데가 없는 것 같다.
일본에선 무우 속에서 DDT·BHC(암약의 하나)·「딜드린」(살충제) 등 유기 염소계의 농약이 나왔었다. 이들은 어떤 화학작용으로도 분해되지 않고 인체에 축적된다. 실제로 일본에선 수보병가 같은 전율 스러운 공해병이 나타나기도 했었다.
요즘 우리나라의 어느 지방에선 「무공해 식당」이 생겨 성업중이라고 한다. 글쎄, 그 청정도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지만 문전성시라는 얘기는 새삼 세상의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런 풍속은 오늘의 사람들이 어느새 「생활의 양」 보다는 「생활의 질」 에 얼마나 목말라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나마 선택의 여지가 있는 식도락가는 모르지만 ?수궁하고 시장에서 형편대로 먹어야하는 사람들은 미처 공해 따위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요즘 몇몇 산업도시에서 잇달아 괴질 이 나도는 것은 비단식물만의 문제가 아닌 것을 한층 실감하게 한다. 다만 일상을 통해 우리 입으로 먹어야 하는 식물의 경우는 그 불쾌감이 더 할 다름이다.
문제는 정책의 우선순위에 있다. 인간회복의 도덕적 가치를 수반하지 않는 정책은 결국 그 의미를 잃게 된다. 공해문제야말로 이런 각도에서 심의 있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건너편 식당」엘 가도 청정은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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