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티를 막아라 공화당 경선 뛰어든 미 월가·대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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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국 미시시피주는 워싱턴 정치평론가들 사이에서 앨라배마주와 함께 ‘성경벨트’로 불린다. 기독교적 보수주의(Theocon) 바람이 강한 곳이어서다. 공화당 텃밭이란 얘기다. 미 재계가 자원(선거자금)을 집중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그런데 최근 미시시피가 격전지로 돌변했다. 재계 목소리를 대변하는 로비스트들이 화력(돈)을 집중했다. 한 인물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다. 바로 크리스 맥대니얼이다. 그는 극우파 ‘티파티’의 선봉장이다. 올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경선(Primary)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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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우 보수 시민운동으로 시작한 티파티는 2010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는 데 1등 공신이었다. 이후 공화당 내에선 거대자본을 대변하는 기존 주류와 반(反)월가, 반대기업 정서가 강한 티파티의 권력 투쟁이 시작됐다. 뉴욕타임스(NYT)는 “티파티가 작은 정부, 적은 세금을 주장함과 동시에 기존 우파 주류에 반기를 드는 세력”이라고 설명했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되면서 세가 꺾였던 티파티가 최근 전열을 정비해 공화당 내 주류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맥대니얼의 부상에 놀란 재계는 새드 코크런을 대항마로 내세웠다. 미국 진보적 매체인 허핑턴포스트는 “워싱턴 로비스트 거리인 K스트리트가 대기업이 대준 50만 달러(약 5억2000만원)를 티파티 대항군 새드 코크런에게 지원했다”고 전했다. 단일 선거자금으론 거액이다. 실제 뭉칫돈 지원 덕분에 코크런의 전체 선거자금은 446만 달러에 달했다. 레이시온·보잉 등 군산복합체와 거대 제약회사인 머크 등이 지원한 돈이다. 반면 티파티 맥대니얼은 154만 달러 정도를 모으는 데 그쳤다. 돈줄은 보수단체 지원금인 ‘성장을위한펀드’ 등이었다.

 선거 직전 여론조사나 1차 선거에서 맥대니얼에게 밀렸던 코크런은 재계의 실탄 지원 덕에 24일 결선에서 겨우 이겼다. 선거자금을 더 많이 모은 쪽에 승리의 여신이 미소를 짓는 미국 선거판의 속성이 통한 셈이다. AP통신 등은 “코크런이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막판 네거티브 광고를 쏟아붓고 조직을 총동원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날 공화당의 또 따른 텃밭인 오클라호마주 상원의원 후보 경선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펼쳐졌다. 티파티의 TW 섀넌과 에너지 기업의 지지를 받은 제임스 랭크퍼드가 맞붙었다. 승자는 선거자금 211만 달러를 모은 랭크퍼드였다. 패자인 섀넌은 143만 달러를 모았다.

 허핑턴포스트는 “미 거대 기업(Big Business)들이 공화당 텃밭 경선에 수백만 달러를 투입한 일은 극히 드물다”며 “그들의 화력 지원이 1896년 대통령 선거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당시 공화당 윌리엄 매킨리(1843~1901)와 민주당·민중주의 단일 후보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1860~1925)이 맞붙었다. 미 정치평론가인 케빈 필립스는 『부와 민주주의』란 책에서 “당시 부르주아들은 금권정치와 금본위제 폐지를 주장한 브라이언을 ‘가장 위험한 선동가’라고 규정하고 매킨리를 총력 지원했다”며 “매킨리는 월가와 대기업들이 돈을 주고 자신의 집 앞까지 모아온 유권자들에게 연설하는 아주 편한 선거를 했다”고 했다. 반면 브라이언은 유권자들을 찾아 미국 전역을 돌아다녀야 했다. 결과는 매킨리의 승리였다. 이후 10여 년은 미국 역사상 가장 친기업적인 시대였다.

 그렇다면 요즘 미 재계가 공화당 텃밭 경선에 머니 파워를 집중하고 있는 까닭은 뭘까. 이른바 ‘버지니아 쇼크’ 때문이다. 이달 10일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인 에릭 캔터가 티파티의 데이비드 브랫에게 졌다. 뜻밖의 일격이었다. 캔터는 공화당 계파 지형에서 ‘주류의 주류’인 친기업 보수(Corporate Con)에 속한다. 그의 뒤엔 골드먼삭스와 블랙스톤 등 월가가 있다. 버지니아 경선 직후 워싱턴포스트(WP)는 “캔터의 패배가 미 재계를 긴장시켰다”며 “그들은 티파티의 승리가 이어지면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창구가 줄어들까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도 좌파 쪽인 미 경제정책연구소(CEPR) 공동 소장인 딘 베이커는 “티파티가 1870년대 거대 기업(트러스트)이 등장하기 전 자유경쟁 체제 복원을 꿈꾸고 있다”며 “이뤄질 수 없는 꿈을 갈망하는 무리”라고 촌평했다.

 한때 공화당 내 친기업 보수와 티파티는 동맹관계였다. 각각 ‘사회주의자’ ‘독재자’라고 부르는 공동의 적과 맞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오바마 대통령이다. 캔터는 지난해 연방정부 부채 한도 협상에서도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공화당 주류가 부채 한도 협상에서 오바마에게 한발 물러서자 동맹에 금이 갔다. 미 정치·경제 전문 매거진인 슬레이트는 “티파티 쪽은 ‘친기업 보수가 오바마 쪽에 붙었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공화당 내전’이 재점화한 것이다.

 친기업 보수와 티파티의 6월 전적은 2대 1이다. 11월 4일 중간선거 직전인 10월 말까지 30여 개 주에서 공화당 경선이 진행된다. WP는 최근 여론조사를 근거로 “올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 지배를 이어가면서 상원마저 장악할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전했다. 당내 예선 승리가 곧 당선일 수 있다. 이는 티파티와 친기업 보수의 경쟁을 더욱 가열시키는 요인이다.

 친기업 보수는 공화당 주류다. 1861년 남북전쟁 이후 153년 동안 기둥이었다. 그 사이 이들은 농장주들과 싸우고(남북전쟁), 반독점 세력과 투쟁하고(1910년대 혁신주의 시대), 뉴딜 세력과 경쟁·타협하고(30~50년대), 큰 정부에 맞서며(70년대) 강한 생명력을 자랑해왔다. 그런데 이들이 새로운 도전과 마주섰다. 제프리 가튼 전 예일대 경영대학원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월가와 대기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각종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며 “게임 방식이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때 자신들의 보루인 공화당 내에서도 티파티에 주도권을 넘겨주면 게임의 룰이 더욱 불리해질 수 있다.

강남규 기자

[J코드] 증세·큰 정부 혐오하는 극우 보수

티파티(Tea Party) =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한 2009년 미국 길거리 시위에서 시작한 보수주의 정치 운동. 독립전쟁의 방아쇠인 보스턴 차 사건의 영어 표현(Boston Tea Party)에서 이름이 나왔다. 미국의 진보성향 시민단체인 무브온(Move on)의 대항 세력이다. 증세와 큰 정부에 반대한다. 대기업·월가 등과도 라이벌 관계다. 미국 남부와 중부가 주요 텃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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