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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논란 자초한 군의 비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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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승식
최승식 기자 중앙일보 포토팀장
‘가짜 임 병장’이 지난 23일 강릉아산병원으로 이송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유성운
정치국제부문 기자

22사단에서 벌어진 임모 병장의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해 엉뚱하게 군과 민간인 사이에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사건의 본질과 상관없는 곁가지 사안 때문에 군 당국이 시간만 허비하는 꼴이다.

 가짜 병사 후송이란 초유의 사건을 벌인 것에 비난이 쏟아지자 군은 24일 “강릉아산병원의 요청 때문에 그랬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강릉아산병원 측이 “그런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자 군은 “다시 확인해보니 강릉아산병원과 계약된 129 구급차가 그랬다”고 말을 바꿨다. 그런데 이 해명도 하루 만에 꼬였다. 129 구급차 측이 “군에 그런 부탁한 적이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강릉아산병원 측도 “알아보니 그런 적이 없다. 129 구급요원은 의료진도 아니고, 병원기관도 아니고, 어떤 권한도 없다”며 “상식적으로 구급요원이 군에 요청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다시 논란이 일자 임 병장을 후송했던 국군강릉병원 측은 26일 “구급차에 환자를 실었더니 (129 측) 운전자가 ‘아산병원 측에서 기만(가짜) 병사를 싣고 응급실과 지하실로 나누어 들어가기로 했다’고 말해 그대로 따랐다”며 “다만 병원 측에 따로 확인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해명도 문제다. 민간인인 구급차 운전사의 말만 듣고 군이 가짜 환자를 급조한 수송 작전을 벌였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과연 국민들이 이를 납득할 수 있을까.

 군은 병원 앞에 취재진이 몰려 있어 치료가 늦어질까봐 가짜 병사를 동원했다고 해명했다. 차라리 군이 처음부터 언론에 협조를 요청했으면 어땠을까. 환자의 생명이 촌각을 다투고 있으니 이송 과정에서 취재를 자제해달라고 했으면 언론이 거부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이런 황당한 논란이 생길 일도 없었다.

 임 병장의 메모를 둘러싼 군과 유가족 간의 진실 공방도 마찬가지다. 임 병장이 자살 시도를 하기 전에 남긴 메모는 이번 사건의 핵심 단서다. 내용을 공개해달라는 요청에 군은 “유가족들이 강력히 반대하기 때문에 메모를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가족 측은 26일 그런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유가족 측은 “군이 우리를 핑계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이날 예정된 영결식도 보류했다. 그러자 군은 “유가족이 ‘사건의 진상이 드러날 때까지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한 것’”이라고 번복했다. 처음과는 뉘앙스가 달라졌다. 오히려 군이 “유가족들의 강경한 반대”라고 한 언급 때문에 “메모에 희생 병사들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긴 것 아니냐”는 루머가 나돌고 있다. 군 당국은 무조건 숨기고 보자는 식의 ‘비밀주의’가 오히려 불필요한 논란만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유성운 정치국제부문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