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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와의 전쟁, 종이 없는 회의 … 무도정신으로 다시 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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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이 경영정상화를 위해 조직문화부터 업무체계까지 경영 전반에 걸쳐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사진은 조직문화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 임직원들의 업무 모습. [사진 한국농어촌공사]

고려 때 이규보는 자신의 당호를 ‘지지헌(止止軒)’으로 지었다. 지지(止止)는 주역에서 “그칠 곳에 그치니 속이 밝아 허물이 없다”고 한 데에서 나왔다. 이규보는 “지지라는 말은 그칠 곳을 알아 그치는 것”이라면서 “그치지 말아야 할 데서 그치면 지지가 아닌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를 “그침을 아는 지지(知止)도 중요하지만 이를 즉각 실행에 옮기는 지지(止止)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이미 도를 넘었는데 여태 아무 일 없었으니 이번에도 괜찮겠지 방심하다가는 큰 코를 다친다는 뜻이며, 그칠 때를 잘 분간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기업이 경영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지지(止止)’에 힘쓰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몇몇 공기업의 수장들은 살아남기 위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기관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공(公)기업’으로서의 면모를 되찾기 위해 조직문화부터 업무체계까지 전면 개조에 나섰다.

 한국농어촌공사가 대표적인 예다. 경영체질을 전면 개선하기 위해 일하는 방식부터 개선했다. 온라인 경영 보고, ‘Paperless(종이를 쓰지 않는)’ 회의, 집중 근무, 시차출퇴근(근무시간 조정) 등 유연한 근무를 위한 제도를 추진했다. 보고문서는 1장으로 줄이고, 종이 없는 회의를 위해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전자회의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젠 현장업무 수행 중에도 사무실에서처럼 결제와 의사결정을 실시간으로 할 수 있게 됐다.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는 “장황한 보고문서 작성, 결제 등에 걸리는 대기시간이 줄어드니 직원들이 본업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석유관리원도 업무 패러다임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석유시장의 유통질서 확립을 위한 기초 단계다. 먼저 발로 뛰며 주유소를 단속하던 과거의 업무 방식에서 벗어났다. 2012년부터 가짜석유 제조의 주요 원료인 용제 불법유통을 차단하기 위해 불법유통이 확인된 사업자에 대해서는 용제공급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하는 등 관리를 강화했다.

한국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이후 가짜석유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 용제의 유통량이 급격히 줄었고, 용제가 자동차용 연료로 불법 전용되는 것을 원천 차단하면서 2013년 용제 유통량은 2010년 대비 약 8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전력공사는 부채감축에 전력을 다한 사례다. 2008년 이후 부채비율이 급상승해 2013년 136%에 이른 한국전력공사는 조환익 사장이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면서 본격적인 부채감축에 돌입했다. 그 결과 6년 만에 흑자전환 터닝포인트를 달성했다. 한국전력공사 관계자는 “악순환을 벗어나 호전 상태에 들어섰다”고 귀띔했다. 한국전력공사는 개혁·혁신의 컨트롤 타워 기능을 할 경영혁신추진단을 구성, 부채감축·방만경영·제도문화혁신 비상대책위원회 등 3개의 비상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선 사업구조조정·자산매각·원가절감·수익창출·금융기법활용 등 다섯 분야에 대해 17개의 프로젝트를 선정, 추진하고 있다.

  배은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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