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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 '魔의 산책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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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울릉도의 해안 산책로에서 관광객이 파도에 휩쓸려 숨지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해면에서 2∼5m 높이의 산책로를 걷던 관광객을 파도가 덮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우안도로’로 불리는 문제의 산책로는 울릉도의 중심지인 울릉읍 도동리에서 남서쪽 사동리 쪽으로 난 너비 1∼2m 길이 7백여m의 해변 바위절벽 사잇길이다.

지난 5일 오전 10시50분쯤 이 길 5백m지점에서 친구들과 산책하던 대학생 정모(20·2년)군이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익사했다. 정씨는 119구조대 등에 의해 두시간 뒤 인양됐다.

이에 앞서 4일 관광객 김모(56·서울 서초구 반포동)씨 부부 등 3명이 비슷한 장소에서 산책하다 갑자기 덮친 파도에 밀려 바다에 빠졌다. 이들은 1백여m쯤 떠내려가다 구조돼 울릉의료원으로 옮겨지던 중 모두 숨졌다.

동해해경 울릉파출소 측은 “사고가 난 날은 폭풍주의보가 내려지지 않아 산책로가 개방돼 있었다”며 “관광객이 큰 파도가 갑자기 닥칠 줄 몰랐을 것”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바다를 구경하거나 낚시꾼이 2∼3년에 한번 꼴로 익사하거나 파도에 휩쓸리는 사고가 발생한다”며 “사고 구간에는 평소에도 갑자기 큰 파도가 일어 주민들도 경계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고 구간에 난간 등 안전시설이나 경고표지가 없다는 점이다. 울릉군이 지난해 10월 3백30m 구간의 산책로에 와이어 로프로 새 난간을 만드는 작업을 한 것이 고작이다. 나머지 구간에도 낡은 난간이 있긴 하지만 사고지점 인근에는 안전시설물이 전혀 없었다. 관광객을 통제하거나 구조하는 현장요원도 배치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사고 이후 군청과 해경이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울릉군 관계자는 “수십년전 어민들이 다니면서 산책로가 자연적으로 만들어져 법적인 관리 주체가 없다”며 “폭풍주의보가 내리면 해경 파출소가 산책로 입구의 문을 잠그고 해제되면 열어 놓는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을 위해 산책로를 막으면 항의가 빗발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파출소 측은 “군으로부터 문 개폐를 의뢰받았을 뿐 관리책임은 군청에 있다”고 반박했다.

김씨 부부의 가족인 정헌수(45·회사원)씨는 “수많은 인명사고가 났지만 여전히 기관끼리 책임을 떠넘기는 등 어처구니 없는 행태를 보인다”며 “곧 법적 대응을 할 작정”이라고 밝혔다.

울릉군은 이곳에 난간을 새로 설치하고 안내 표지판을 세우는 등 시설물을 보강하겠다고 밝혔다.

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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