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베 우향우, 일본 지식인들도 등 돌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현재 일본은 경제적으로 한국에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대일본제국이라고 자부했던 나라가 제국의 여유를 지킬 수 없게 된 거죠.”

 한국인이 일본을 향해 뱉은 소리는 아니다. 일본의 지식인 야마자키 고타로(67)가 고노담화 검증 논란 등을 앞두고 『반한론의 심리와 논리』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밝힌 주장이다. 지난 50여 년간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연구한 최서면(88·사진) 국제한국연구원 원장은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잇따른 우경화 행보에 일본의 지식인들도 등을 돌리고 있다며 이 같은 발언들을 공개했다. 18일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열린 창의성 아카데미 고위자 과정 수료식 강연을 통해서다.

 최 원장은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다’와 같은 주장이 담긴 『매한론』 등 일본 서적 30여 권을 강단에서 꺼내 보였다. 그는 “잔 다르크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식의 주장을 담은 이런 책들이 일본의 서점에 가면 이보다 10배만한 규모로 진열돼 있다”며 우경화의 심각성을 알렸다.

하지만 근거 없는 비판으로 일본의 우익 안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원장은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과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친일 미국인조차 일본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고노담화 검증과 같은 일을 계속 진행한다면 국제적으로 고립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우식 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이 주관한 이날 강연에 참석한 대검찰청 부장검사와 기업 대표, 대학 교수 등 40여 명의 표정이 엄숙해졌다. 40분 남짓 강연이 끝나자 “독도 문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는 등의 추가 질의가 쏟아졌다.

 최 원장은 자유당 정권 시절인 1957년 일본으로 건너가 30여 년간 한·일 관계를 연구했다. 고(故) 최규하 전 대통령의 사촌동생이기도 한 그는 이승만 정권의 탄압을 피해 일본으로 피신했다. 일본의 외무성 외교사료관에 파묻혀 지내면서 안중근 자서전과 재판 기록, 일본의 독도 인근 어업 금지 자료 등 한·일 관계를 뒷받침하는 세밀한 자료를 직접 발굴해 내는 성과를 거뒀다.

그의 마지막 꿈은 중국에 있는 안중근 의사 유해를 조국으로 돌려놓는 것. 서울 종로구 자택의 침실은 안중근 의사에 관한 서적만으로 둘러 싸여 있다. 그는 “나의 연구가 한·중·일이 서로 등을 지도록 하는 게 아니라 과거를 교훈으로 발전적인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