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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초성터 발견은 뜻깊다|김정기(문화재연구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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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국내 여러학술기관에서 매우 중요한 각종 유적·유물의 발견이 잇달아 있었다. 바야흐로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탐사연구가 본궤도에 오른 느낌이라 경하스러운 일이다.
단국대의 단양 적성비에 이어 중원봉황리의 우가사유상을 포함한 삼국시대 마애불상군, 호암미술관의 신라 감지금은이사경, 서울대와 영남대에 의한 양주 전곡리 초기구석기유적등의 발견은 그 어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의 관계 전문학자들을 감탄케할 귀중하고도 가치가 큰 발견이었다.
근간에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이선근박사와 국사편찬위원회 최영희위원장이 직접 양주 고읍리에서 매초성지로 판단되는 유적을 발견했다. 매초성은 신라와 고구려·백제 유민이 힘을 합해 신라를 정복, 속국화하려고 침공한 당나라 50만대군을 섬멸, 격퇴하여 통일된 신라의 국권을 반석위에 놓은 대첩지인 것이다.
매초성지 발견소식을 묻고 지난 23일 이선근박사, 김철준박사와 필자는 이 유적을 답사하는 기회를 가졌다. 현지는 의정부시 북쪽 약3km지점이며 천보, 불곡, 도악및 칠봉동 4,5백m의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북류하는 강화천이 이곳을 꿰뚫고 있는 요지였다. 이 일대는 고구여에서는 매성군, 백제에서도 마성군, 신라에서는 견주라 했고 후에 양주로 호칭된 곳임은 여러 문헌으로 분명한 곳이다.
매초성으로 알려진 토성은 풍화된 화강암반을 기층으로 하는 길이 약5백m, 폭30m, 높이10m내외의 구릉을 이용하여 그 능선위에 인공으로 토성을 쌓은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허물어져 표면조사로는 한 두곳에서 인공적인 축토를 볼수 있을 뿐 확정지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역사지리학적으로 보면 문헌자료나 부근의 지형과 임란때의 대무, 양주의 두 산성등으로 보아 충분히 토성이 있을만한 곳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경우 이것을 매초성지라고 판단하는 것은 타당한 일이다. 이 성지가 예측대로 매초성지로 확정되면 이는 한민족이 한덩어리가 되어 국난에 대처하고 이를 극복한 역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없이 중요한 유적으로서 길이 보존되어야 할 유적이다.
멀지 않아 정신문화연구원과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학술조사가 실시되고 토성여부는 물론, 그 구축기법, 규모와 그밖의 유구·유물등이 밝혀져서 그 의의를 한층 더 심화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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