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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혼돈시대<8>만나면 한잔… 라면 먹고도 한 잔 한해 마신 코피 값 8백60억원|「고유차」의 연간소비량은 커피의 3%도 안돼|「격조」와 「건강」 찾는 사람도 코피 못 없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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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라면을 먹었어도 「코피」1잔을 마시지 않으면 허전하다. 아무리 급해도 「코피」l잔으로 입을 추겨야 용건이 시작된다. 선박회사 영업사원인 K씨는 하주들을 찾아다니며 상담을 벌이느라 하루평균 10잔 이상의「코피」를 마셔야 한다. 심지어는 「코피·포트」를 「플러그」에 꽂고서야 책상머리에 앉는 수험생들도 흔해졌다.
구태여 서구문화 운운하지 않더라도 「코피」는 이제 우리생활의 일부처럼 돼버렸다. 과연 얼마나 마셔댈까?
원두 1알 나지 않는 우리 나라에서 지난 한해 동안 마신 「코피」는 1천5백t (국산「코피」). 잔으로 마시면 6억6천만 잔 (1「파운드」당 1백50∼2백 잔)에 달하며 다방「코피」값 1백30원으로 계산할 때 무려 8백60억원 어치를 마신 것이다.
이중 전체 「코피」소비량의 3분의1이 소요된다는 서울의 경우 8백50만 인구가 1인당 3천원 이상을 「코피」 마시는데 쓰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코피」원두의 유입량도 70년 1천5백t에서 78년 3천t (1천4백만「달러」)로 배증했고 여행자나 외국군부대 등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외제「코피」량도 연간 3백t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매상의 90% 이상이 「코피」인 다방수도 전국 1만7백52개(78년 말 현재)에 이르며 지난해부터 선을 보여 길거리나 「빌딩」안에 설치된 1천1백대의 자동판매기에서도 1일 평균 15만 잔「코피」를 쏟아내고 있다.
마시는 양뿐만 아니라「코피」를 찾는 입맛도 고급스러워졌다.
『원두「코피」전문』이라는 간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충무로 길의 K다방. 3명의 여대생이 자리를 잡고 앉아 각기 입맛에 맞춰 발음하기에도 까다로운「코퍼」들을 주문한다. 「브라질」산 「산토스· 코피」, 「이디오피아」산 「모카·커피」, 「이탈리아」식의 「에스페레스· 코피」.
이 근처에서 원두「코피」로 이름 깨나 난 다방들은 법망을 교묘히 피해「샌드위치」1조각을 끼워 「코피」 1잔에 2백50원∼3백원씩을 받고 있지만 1백30원 짜리 다방보다 항상 붐빈다. 과연「코피」맛을 식별하는 미각이 그만큼 높아진 탓일까.
얼마 전 미국에서 2년간 살면서 「코피」의 진미(?)에 길든 한 신사가 국산「코피」는「코피」가 아니라며 2「파운드」짜리 미제「레귤러·코피」10통 까서 「플라스틱」양동이에 담아 들여오다 적발되기도 했다.
관광객 유치를 명목으로「코피」값이 자유화된 일류 호텔의 「코피·숍」은 보통 4백원에서 6백원 선으로 설렁탕 1 그릇값. 종류에 따라서는 1천3백50원 짜리도 있다.
P 「호텔」「레스토랑」에서 파는 「아이리시·코피」는 1잔에 2천원. 「웨이터」가 손님 앞에서 직접 끓인다. 먼저 「코피」잔의 가장자리에 「레먼」즙을 바른 후 그 부분에 설탕가루를 묻히고 불에 그을린다. 설탕물이 「레먼」과 적당히 배합되면 잔 속에다 「아이리시·민트」라는「위스키」l 숟갈 (1「온스」)를 붓고 불을 지른다. 불이 꺼지려는 순간 「웨이터」는 정중히「레귤러·코피」를 따른 다음 「위핑·크림」이라는 날「크림」을 얹으면 비로소 2천원 짜리 「코피」가 완성된다.
우리 나라에서 맨처음 「코피」를 마신 사람은 고종황제라고 한다. 고종이 「러시아공관으로 피신(아관파천)했을 때「러시아」여인 손담이「코피」를 끓여 대접했다는 것이다. 이후 서구물결과 함께 『茶=코피』일정도로 대중화됐고 어느 다방엘 가도 유자차나 계피차 등 10여종이 넘는다는 우리의 고유 차는 구경하기도 힘들다.
최근 일부에서는 아예 응접실에 「코피」를 없애고 인삼차· 유자차· 보리차 같은 것만 대접하는 회사나 관청도 간혹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차를 마신다』는 데서 일말의「격조」를 느끼는 사람조차 스스로는 「코피」를 응접실에서 없애지 못한다. 야릇한 미련과 아쉬움 때문인 것 같다.
우리 나라에서 건너갔다는 다도는 일본의 고유문화로 뿌리를 내렸는데 반해 다례로 표현됐던 우리의 차 마시는 풍습은 명절날 조상에 대한 예식의 이름 정도로밖에 남아 있지 않다.
원래「코피」란 기름기 많이 먹는 서양사람 체질과 식생활에 맞는 것.「코퍼」를 많이 마실 경우 위산과다·위염 등을 초래한다는 것이 의학계의 정론이고 보면 특히 김치 먹는 우리나라사람 체질로는 이로울 것이 없다.
최근 국산 차 제조 「메이커」들과 애호인들을 중심으로 우리『고유 차 찾기』「캠페인」을 벌이는 등 「코피」대신 국산 차의 보급 운동을 펴고 있으나 연간소비량은 50t 수준에 머물러있다.
하루에 「코피」 3천 잔을 판다는 D「빌딩」지하 H다방 주인은 원가가 싸서 수지 면에서도 유리한 국산 차를 팔려고 해도 손님들 대부분이 습관적으로 「코피」를 찾는다고 말한다. 아무리 값도 싸고 (「코피」의 3분의1 ) 건강에도 좋다고 해도 안 마신다는 것이다.
이 바람에 76년「코피」파동 때 일어섰던 40개 국산 차「메이커」들은 개점휴업상태.
비공식집계에 따르면 일본 다방이「코피」한 잔에 10g 안팎의 「코피」를 타는데 비해 우리 나라 다방의 한 잔은 3g 정도밖에 안 되는데도 「코피」만을 찾는 손님들로 만원인 것을 보면 진정 「코피」맛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이장규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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