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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넣은 홍명보 '신의 한 수' … 알제리 공중볼 약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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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 대표팀은 튀니지·가나와의 평가전에서 잇따라 패해 국민의 기대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평가전과 달리 러시아와의 월드컵 1차전에서는 국민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유니폼 상의에 적힌 ‘투혼’이란 글씨를 저마다 가슴에 새기고 뛰었다. 이겼다면 더 좋았겠지만 비긴 것도 나쁘지 않다. “한국 선수들 이름을 알 필요 없다”던 파비오 카펠로(68) 러시아 감독의 생일상을 엎지는 못했지만 생일 케이크에서 초는 빼온 것 같다(카펠로의 생일은 6월 18일이다).

 내가 보기에 이번 경기 최고 스타는 이근호(29·상주 상무)다. 난 후배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딱 한 번 해봤다. 그 후배가 바로 이근호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난 뒤늦게 합류했다. 최종예선에서 정말로 잘 뛴 이근호가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된 게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대회 후 귀국해 근호에게 “네가 갔어야 할 자리인데 내가 가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근호의 골은 ‘땡큐’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땡큐’보다 더 좋은 ‘때땡큐 골’이라고 해야 할까.

 선발 출전한 원톱 박주영(29·아스널)은 55분간 슈팅 하나 못 날리고 교체됐다. 하지만 이걸 두고 비난해서는 곤란하다. 공격수가 할 일은 슈팅과 득점이 전부는 아니다. 박주영은 전반에 최전방에서 힘 좋은 러시아 선수들을 흔들어주며 고군분투했다. 박주영이 러시아 선수들을 괴롭혔기에 이근호에게 찬스가 온 것이다. 이근호의 골 뒤에는 박주영의 보이지 않는 어시스트가 있었던 셈이다. 나도 2002년 한·일 월드컵 미국전 때 황선홍(46·포항 감독) 선배와 교체 투입돼 골을 넣었다. 선발 출전한 선홍 형이 상대 수비를 괴롭히며 지치게 해서 내가 골을 넣을 수 있었다. 홍명보 감독의 교체 타이밍은 거스 히딩크 감독님 못지않게 기가 막혔다.

 선수들에게 쓴소리 하나 하겠다. 케르자코프가 동점골을 넣을 때 한국 선수들은 오프사이드라며 손을 들었다. 주심 휘슬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손을 들며 멈칫거렸다. 판정은 심판이 하는 것이니 선수들은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는 전력을 다해 뛰어야 한다. 손을 드는 게 아니라 재빨리 발을 움직여 상대를 막았어야 했다.

 2차전 상대 알제리는 벨기에와 1차전에서 1-2 역전패를 당했다. 마크 빌모츠 벨기에 감독은 “알제리는 선제골을 넣은 뒤 축구를 하기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는 유난히 득점이 많다. 선제골을 넣은 뒤 잠그면 알제리나 일본처럼 당한다. 일본은 코트디부아르에 1-2로 역전패했다.

 현역 시절 알제리 대표팀과 맞대결한 경험은 없다. 알제리 혈통 지네딘 지단과는 프랑스와 평가전에서 맞붙어봤다. ‘알제리의 지단’이라 불리는 소피안 페굴리(25·발렌시아)는 리오넬 메시(27·아르헨티나)만큼 드리블이 좋다. 수비형 미드필더 한국영과 기성용이 미리 막아야 한다. 김남일이 “한국영에게 ‘진공청소기’ 별명을 물려주겠다”고 했던데, 오늘 보니까 한국영이 김남일보다 잘하더라.

 알제리가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벨기에의 펠라이니가 넣은 동점골은 한·일 월드컵 미국전에서 내가 넣었던 헤딩 동점골과 비슷했다. 알제리는 공중볼에서 약점을 보였다. 수비 때 맨투맨을 놓치는 등 불안정했다. 프랑스 FC 메츠에서 뛸 때 동료였던 카를 메드자니(29·발랑시엔)가 알제리 대표팀에서 뛰고 있다. 체격 조건이 좋지만 순간 동작이 느렸다는 기억이 난다. 알제리 수비는 월드컵 예선 8경기에서 6골만 내줬지만 종종 집중력이 떨어져 제 위치를 금방 못 찾고, 지나치게 터프한 플레이로 카드를 받는다. 단, 알제리 선수들이 러시아보다 개인기가 좋고 스피드가 뛰어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난 2006년 독일 월드컵 토고전에서 골을 넣었다. 아프리카 선수들은 심리 변화가 크다. 일대일 상황에서 몸싸움도 하고, 신경을 건드려야 한다. 짜증나게 만들어야 멘털이 무너진다.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 러시아전에 최소한 비길 것 같다고 예측했다. 그 예상이 맞았다. 알제리에는 이기면 좋겠지만 비길 것 같다. 한국은 벨기에를 잡고 1승2무로 16강에 진출할 것 같다. H조 최강자 벨기에가 2경기에서 2승을 챙긴 뒤 16강전을 대비해 한국전에는 느슨하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정환 중앙일보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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