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합격자, 십중팔구는 이공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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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삼성그룹 18개 계열사의 상반기 대졸 공개채용 합격자(4000여 명) 중 80∼90%가 이공계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부터 이공계 출신만 공채로 뽑은 현대차를 비롯해 LG·SK 등 4대 그룹 모두 이공계 선호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18일 삼성그룹에 따르면 지난 16일 발표한 삼성전자 상반기 공채 합격자 중 이공계 비율은 80% 후반대를 기록해 지난해(85%)보다 조금 더 높아졌다. 전자부문 계열사인 삼성전기와 삼성SDI, 삼성SDS 역시 이공계 출신 합격자 비중이 80∼90%에 달했고, 삼성중공업은 이공계가 90%를 넘어섰다.

 삼성 관계자는 “과거에 주로 인문계 출신이 많았던 물산에서도 건설 부문은 80∼90%가, 상사 부문 합격자의 30∼40%가 이공계였다”고 전했다. 상사 부문도 자원개발이나 철강·에너지 분야 인력 수요가 많아지면서 이공계 전공자에게 더 유리해졌기 때문이다.

 반면 인문계는 합격자의 10∼20%에 불과했다. 삼성 공채 지원자 10만여 명 중 30~40%가량이 인문계 출신이었던 것에 비하면 이공계보다 경쟁이 훨씬 치열했던 셈이다. 그나마 패션사업 부문이 있는 삼성에버랜드나 호텔신라 제일기획 정도만 인문계 출신을 좀 더 많이 뽑았다. 다른 기업들도 이공계 인재를 더 뽑지 못해 아쉬워하는 상황이다. 수출 위주의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대기업들엔 경쟁력의 관건이 기술인 탓이다.

 지난 5월 말 현대차그룹이 발표한 공채 합격자 명단에는 이공계 출신이 100%였다. 올해부터 공채 신입사원은 이공계만 뽑기로 한 결과다. 인문계는 연간 수시로 채용한다고 했지만 지난해보다 채용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엔 현대·기아차 대졸 공채 신입사원의 75∼80%가 이공계였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동차 산업이 전자·친환경 산업과 융합되면서 기계공학 이외 이공계 전공자들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어 채용에도 반영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상반기 공채가 진행 중인 LG그룹과 SK그룹도 각각 80%, 70% 이상을 이공계 출신자로 뽑을 방침이다.

 공채로 선발한 인문계 출신을 상대로 한 이공계 기술 교육도 강화되는 추세다. 삼성은 지난해 상반기 채용부터 대졸 신입사원을 뽑아 6개월간 960시간의 소프트웨어 교육을 시키고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배치하는 ‘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CSA)’를 운영하고 있다. 10년 이상 경력의 석·박사급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서 인문계 출신 신입사원들에게 이공계 대학 학부 과정 이상의 시간을 들여 가르쳤다. 현재 삼성전자와 삼성SDS에 각 200명씩 배치됐다.

 금융권에서도 최근 금융과 정보기술(IT) 두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전문인력 수요가 늘고 있다. 보안 문제뿐 아니라 IT 기업이 금융업에 진출하고 금융에서도 빅데이터 사업이 주목 받는 등 산업이 융합되고 있어서다. 최근 하나·우리금융그룹을 중심으로 금융 IT 전문가 양성 체계를 갖추자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취업전선에서 이공계 우대 현상이 뚜렷해지자 취업준비생들의 전략도 확 바뀌고 있다.

 이공계 학생들보다 더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 인문계 학생들은 시험점수 위주의 스펙보다 직무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경력을 쌓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 취업준비생인 대학 2학년 김영진(21·여)씨는 “선배나 대학 취업정보센터에서 토익 점수 올리는 것보다 마케팅 직무 지원할 때 도움이 되는 인턴십 경력이 더 중요하다는 조언을 많이 받았다”며 “올 여름방학 때 다양한 체험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들의 움직임은 여전히 굼뜨다. 산업계나 사회의 수요에 따른 전공별 인원 조정 문제는 거의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서울의 한 상위권 대학 취업정보센터 팀장은 “인문계와 이공계 입학정원을 크게 개편하지 않는 한 취업지도에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며 “우리 대학 졸업생들은 아직까지 인문계도 취업을 잘하고 있으니,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반면 경남 지역 한 4년제 대학 기획실장은 “한 명이라도 더 대기업에 입사시키려면 이공계 비중을 늘려야 하는데, 교수들 자리가 걸린 문제라 이공계 쪽 정원을 늘리기가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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