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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도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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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소」는 원래 우리 말이다. 「왜간장」·「왜 된장」과 함께 그 말까지도 일본서 흘러 들어온 것으로 생각하지만 천만에다.
고려 숙종 때 (1096∼1105) 개성을 다녀간 송나라의 손목이 우리말 3백50개를 추려서 기록한 『계림퇴사』란 책에는 장을 미소 (밀조)라 기록했다. 일본의 무슨 고전에도 고려장을「미소」라고 했다.
요즘 일본 사람들이 「미소」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 「미소」의 전언이다.
장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담기 시작했다. 신라의 신문왕 (681∼692)은 왕비를 맞으면서 쌀·술·기름·꿀·장·메주 등을 예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장이 얼마나 귀물인가를 알 수 있다.
우리 속담에도 『말 많은 집에 장맛 쓰다』는 말이 있다.
조선조의 석학 홍만종은 『순오지』 (1647년)에서 『언감가장불감』이라고 했다.
옛 사람들은 한 집안의 가풍을 장맛에 비유한 것이다.
그만큼 장은 정성과 지혜와 범절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음식으로 높이 꼽고 있다.
이런 일화도 있다. 전장에서 모처럼 돌아온 김유신 장군은 미처 집에 들를 겨를도 없이 또 다른 전황을 보고 받는다. 그 길로 전진에 나서던 김 장군은 부하를 시켜 황급히 그의 집에 들러 장을 떠오도록 했다. 그 맛을 보고 난 김유신은 비로소 『집안에 별일이 없군!』하고 혼자 말을 했다.
갖가지 장류 중에서도 고추장만은 유난히 절도를 따지는 것 같다. 옛 사람들은 집안 살림이 윤택할수록 고추장 단지도 많았다. 찹쌀·멥쌀 고추장은 보통이고, 팥 고추장·떡 고추장·약 고추장까지 있었다. 형편에 따라 수수 고추장·보리고추장·무거리 고추장까지 담았다.
고추장이 등장한 것은 고추가 전래되고 나서다. 고추는 임진란 이후에 들어 왔다. 우리가 고추장 맛을 본 것은 3백 몇10년쯤 된다.
우리의 식생활이 세련되고 다채로와 질수록 그런 조미 식품들도 역시 다채로와 지는 것 같다. 미식을 찾기 위해 온갖 정성이 기울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어 요즘은 장맛도 국제화하고 있다.
「멕시코 고추장」·「인도네시아 고추장」·「파키스탄 고추장」「타일랜드 고추장」·「대만 고추장」, 지하의 선조들이 이런 고추장 맛을 보면 얼굴 표정이 어떻게 될지 실로 궁금하다.
게다가 서울의 어느 동네에선 「고추장 도둑」까지 등장했다니 이젠 고추장 맛을 가릴 한가한 형편도 못 되는 것 같다. 멀지않아 장독대에 철조망을 치고 사나운 「셰퍼드」를 묶어 놓아야 할 세상이 된 것 같아 절로 고소를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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