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강팀이지만 … 이탈리아 옷에 러시아 구두 신은 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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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난 10일 가나와의 최종 평가전에서 0-4로 대패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68) 감독의 별명은 ‘오대영(5-0)’이었다. 프랑스·체코와 평가전에서 잇따라 0-5 참패를 당해 여론이 싸늘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에게 “우리의 길(our way)만 가면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강팀과 맞대결해 패한 건 보약이 됐다. 우리 스스로 하루에 1%씩 강해지는 걸 느꼈다. 이번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가나에 0-4로 진 게 무슨 상관인가. 우승후보로 거론됐던 스페인도 네덜란드에 1-5 완패를 당하지 않았나. 모의고사를 잘 보고 수능을 망치면 소용없다.

러, 조직력 완성 안 돼 한순간 무너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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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는 무서운 팀이다. 수비에서 미드필드로 볼 배급은 쉬운데, 미드필드에서 공격으로 찔러주는 패스는 쉽지 않다. 러시아는 그걸 잘한다. 전천후 공격수 알렉산드르 코코린(23·디나모 모스크바)이 경계대상 1호다. 주장 로만 시로코프(33)가 부상으로 낙마한 상황에서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맡는다.

 이탈리아 출신 파비오 카펠로(68) 러시아 감독은 러시아에 이탈리아식 축구를 입혔다. 공수 간격이 굉장히 잘 유지되고, 패스 후 무조건 움직이는 것도 인상적이다. 나도 이탈리아 세리에A 페루자에서 처음 뛸 때 간격을 맞추느라 엄청나게 고생했다.

 하지만 현 러시아 대표팀은, 옷은 이탈리아 정장을 입었는데 발에는 러시아 구두를 신은 느낌이다. 카펠로 감독은 지난 6월 1일 노르웨이와의 평가전(1-1무승부)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수비형 미드필더를 포백 바로 앞까지 내리는 전술로 변형했다. 하지만 밀집수비 중 서로 미루다 동점골을 얻어맞았다. 포백이 완성되지 않았고 자신 없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한국, 기성용·구자철 볼 점유율 높여야

 러시아 선수들은 전원 자국 리그 출신이다. 러시아는 춥다. 반면 경기가 열리는 쿠이아바는 연평균 25도로 브라질에서 가장 더운 도시 중 하나다. 한국은 쿠이아바와 기후조건이 비슷한 마이애미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해 모스크바와 상파울루 인근 이투에서 훈련한 러시아에 비해 기후 적응에 유리할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브라질과 칠레·콜롬비아 등 남미 팀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확실한 공격 루트가 손흥민(22·레버쿠젠)-이청용(26·볼턴)의 측면뿐이다. 중원에서 패스를 기가 막히게 넣어주는 선수가 없다. A조 멕시코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멕시코는 카메룬전에서 끊임없이 패스를 돌려 1-0 승리를 거뒀다. 우리도 미드필더 기성용(25·스완지시티), 구자철(25·마인츠)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

 반면 B조 그리스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리스는 콜롬비아에 0-3 완패를 당했다. 그리스는 선수들끼리 흩어진 느낌이었다. 도와주는 게 전혀 없었다. 그리스처럼 하면 망한다. 히딩크 감독은 최전방 공격수들부터 수비에 가담하라고 강조했다. “네가 뺏긴 건 네가 해결하라”는 호통을 수시로 들었다. 홍명보(45) 감독도 11명 전원에게 수비 조직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기당 옐로카드 6개 … 심판 피타나 변수

 돌발 변수도 염두에 둬야 한다. 러시아전 주심은 아르헨티나 출신 네스토르 피타나(38)다. 아르헨티나리그, 브라질 월드컵 남미예선에서 경기당 평균 6개의 옐로카드를 꺼냈다. 러시아의 파워풀한 플레이에 대응해야 하는 한국은 피타나 주심의 깐깐한 판정에 대비해야 한다. 이번 월드컵은 오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피타나 주심은 이번 경기가 월드컵 데뷔전이다. 선수들도 월드컵 첫 경기에 긴장하듯, 심판도 긴장할 수 있다. 오심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교적 어린 우리 선수들은 오심이 나오더라도 흥분하면 안 된다. 히딩크 감독은 불이익 판정이 나오면 벤치에서 양복 상의를 집어던지며 강하게 어필했다. 이로 인해 심판이 보상 판정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부심과 물을 나눠 마시는 여유도 보였다.

 홍 감독과 선수들을 믿는다. 월드컵 때는 없던 힘도 생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이 최소한 비길 거라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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