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목받는 지구(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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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압도적인 지명도와 현란한 경력을 가진 원로나 중진이라고 해서 반드시 편한 선거를 치를 수는 없는 것이 최근의 한국적 정치풍토다.
전에는 여야수뇌급들이 자기 선거구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자당후보를 위한 지원유세에 선거기간을 다 보내는 일이 보통이었으나 유신이후부터는 지원유세도 없어졌지만 중진들이 자기 선거구에 급급하는 경향이 현저히 짙어졌다.
이들 중 심한 경우 낙선의 불안을 안고있는 인사가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을뿐더러 당선이 낙관되더라도 「중진다운」 득표율을 올리기 어려운 인사들도 있는 것으로 말해지고 있다.
정일권 국회의장·이효상 공화당당의장서리·백남억 총재고문 등 공화당쪽 인사들이나 신민당 이철승 대표·김영사 전 총재 및 양일동 통일당총재 등 원로·수뇌급 인사들도 정도차이는 있을 망정 선거의 부담에서 1백% 해방된 사람은 아직 없다.
이런 사정은 박준규·길전식·김용태씨 등 공화당 3역과 신도환·이충환·유치송·고흥문·김재광씨 등 신민당 최고위원, 박병배 통일당부총재들도 엇비슷하다.
정일권 의장이 나서있는 속초-고성-인제-양양은 공천의 후유증이 가장 큰 지역의 하나.
김희관 현 지구당위원장과 허경구씨의 팽팽한 대결 속에서 이안성씨(57)가 공천을 따냈으나 그는 양양국민학교만 나오고 거주지도 서울로 돼있어 현지안면이 전연 없는 인물.
9대 선거 때부터 이분되어있던 신민당조직이 공천경쟁과정에서 김 위원장, 허경구·최정식파 등으로 다시 나뉘고 김인기씨계, 함종윤씨계 등이 그대로 남아있어 사분오열된 당조직을 아무 기반 없는 이씨가 수습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는 관측이다.
이번에도 정 의장의 최고득표율을 목표로 삼고있는 공화당지구당은 이씨 공천에 『방심은 않지만 목표달성은 무난할 것 같다』고 즐거운 표정.
그렇지만 박경원 전 강원지사, 함종윤 의원 등 무시못할 무소속이 있어 김인기씨(신민)의 1만8천표에 비해 3배가 넘는 5만8천표를 얻었던 9대 득표율을 다시 얻어낼는지는 의문이다.
다른 후보들은 『정 의장은 으례 당선될테니 남는 표를 나에게 달라』고 침투전.
정 의장에겐 도로포장·설악산관광자원확대 등의 지역사업 이외에도 외지인이기 때문에 ▲박경원=고성 ▲이안성=양양 ▲함종윤=양양처럼 지역연고는 없지만 이 지역의 인구분포가 △토착=25% △영남=25% △호남=20% △함경도=30%로 돼있어 함경도출신인 정 의징에겐 오히려 지역대결에 초연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 의장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편한 입장에 있는 사람은 신민당의 김영삼 전 총재.
과거 장건상·전진한·박순천·박기출씨 등 야당거물을 뽑아낸 이른바 대도시형 선거구인 부산서-동구에는 공화당의 박찬종 의원이 있을 뿐 아직껏 이렇다할 다른 후보가 없어 선거무투표당선조차 가능한 지역.
민원도 적고 지역사업의 부담도 별로 없는데다 김승목씨와 복수공천됐던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김씨가 부산남구로 옮겨갔고 『내려오지 않아도 당선시켜주겠다』는 것이 선거참모·당원들의 결의라는 것.
이효상 공화당의장서리는 공천과 당선이란 목표를 안고 집념의 선거구관리를 해온 「케이스」.
선거구내 52개 동조직은 물론, 그 아래 반책조직까지 끝내 가동단계.
그렇지만 신민당의 신도환 최고위원이 l위 당선을 목표로 해 뛰고있고, 8대 때 그를 낙선으로 몰았던 신진욱씨(8대의원·협성학원재단이사장)의 출마가능성에다 무소속의 이치호 변호사·공화당 낙천자인 문양변호사 등이 역주하고 있어 싸움판은 유근적인 것이 사실이다.
이 의장서리의 기반으로는 애써 가꿔온 방대한 공화당조직 외에 △천주교 △경북대 영남대 효성여대 경북중고교 등 학교연고 △산악회 등이 있고 국회의장 8년, 공화당의장서리 6년을 지내며 맺어진 사적관계·시혜 등.
신 최고위원도 다져온 신민당조직말고도 △계성고·계명대 등 학교연고 △유도회장으로서의 체육연고 △대구의 친야성분위기 △기독교 등의 기반을 갖고있고 9대 때에 비해 야당 내 지위가 최고위원으로 격상하는 등 비중이 커졌다.
게다가 문씨의 반발출마와 이씨의 집요한 서민층 침투가 이 의장서리의 감표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신 의원과 1위 경쟁의 결말은 속단하기 어렵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변」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일부 분석도 있긴 하지만 결과는 역시 미지수.
전주아성을 지켜온 이철승 신민당대표는 벌써부터 리·반조직을 완료하고 당세확장을 위한 신규당원포섭을 진행 중이나 1위 당선에 덧붙여 야당당수 「몫」을 득표하려면 만심할 수 없는 상황.
『전주에서 야당당수 났다』는 여론, 전북이 김성수·유진산(금산은 과거 전북)·양일동씨 등 「거물」산출지라는 「프라이드」 등을 엮어 선거「무드」를 조성해가고 있으나 야세 중 천주교를 업은 양윤모씨의 출마, 전 비서이자 전주북중 후배인 임광순씨의 출마 등은 감표요인이 될 수밖에 없고 이들 감표요인이 어느 정도 크기로 작용할지 관심사다.
공화당의 유기정 의원은 국민학교 동기동창인 이 대표에게 『1등은 당신이 하라』면서 선거전의 과열을 회피하는 자세이지만 지난 10월28일 완주군봉동읍에서 열린 군민대회에서 이 대표가 『공화당이 통·반장을 동원, 의사당구경이나 시켜주고 점심을 사주는 관광안내원 노릇을 하고 있다』고 포문을 열어 유 의원측도 『증거를 대라』 『나도 모종건에 관한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맞서 한때 티격태격을 벌인 일이 있다.
선명성경쟁으로 몰아가는 유충성 통일당 후보와 신동욱씨(「호텔」경영)의 풍부한 재력구사도 과열요인.
평소 『국회의원은 국가적 차원에서야 한다』는 원칙론에 충실해 지역구문제를 대범하게 넘겨온 백남억 공화당총재고문(김천-금릉-상주)은 침식된 공화당조직부활, 감투약속과 공약남발의 무소속후보 공략 등을 통해 9대 때의 2위 당선을 설욕한다는 목표로 적극전을 전개하고 있다.
공화·신민·통일당 후보 외에 김윤하 의원(무소속)·박정수(국토개발계획심의회부위원장)·정휘동씨(「퍼시픽」호텔사장) 등 무소속 5명이 나서는 난립상은 혼전의 신호를 울려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조직을 갖고 있어 유리하다면 유리한 점.
다만 그의 기반인 김천-금릉쪽에서 박정수씨 등이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는 것이 큰짐.
백 고문주변에서는 『모 무소속후보가 비서관을 12명이나 시켜주겠다고 공약을 하고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박씨의 경우는 부인인 이범준 의원(유정)의 협찬까지 받아가며 장기전을 해온 것이 특색.
9대 때 서울성동구에서 6만6천표를 얻어 3위에 그친 양일동 통일당총재는 그때보다는 나은 사정으로 「리턴·매치」에 나서고있다.
우선 신민당공천자인 김제만씨가 9대의 공천자인 정운갑 의원(강남구로 이전)보다도 싸우기 쉬운 상대라는 주변의 분석이 있고 현 체제에 정면도전하는 통일당 노선에 대한 「야도」 서울의 호응이 크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통일당보의 대량배포와 자신의 각동 순방, 딸을 동반한 조기회참가, 호남유권자 접근 등으로 그의 건재를 과시.
그러나 공화당 민병기 의원도 9대 1위 당선 재현을 위해 조직전을 하고있고, 신민당 김 후보도 「정통야당」을 내세워 맹주하고 있어 선거전양상은 뜨거워질 것 같다.
이처럼 원로·중진지구 가운데는 큰 걱정 없는 곳이 있고 다소 불투명한 곳도 있다.
이런 차이는 그들의 개성·연령·자세와 경쟁상대에 따라 주로 결정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환경」에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대체로 공화당 3역·신민당 최고위원 및 간부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현역원로나 중진들이 당선되리라고 전망들을 하고있으나 일부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은 남아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선거란 더러 「이변」도 낳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중」인사라고 해서 전원 「당선」의 공식이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송진혁·김영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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