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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4시간은 '직장인' 나머지 시간은 '엄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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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엄마와 직장인의 역할을 모두 제대로 할 수 있게 됐어요.”

 올해 상반기 신한은행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에 합격해 9일부터 업무를 시작한 신입 행원들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 신한은행 무교금융센터에서 일하는 안은정(30)씨는 지난해 말 6년 동안 다니던 증권사를 그만뒀다. 퇴근 후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어린이집을 찾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가 잠든 상태에서 출근하고, 잠들고 나서야 퇴근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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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낯설어 우는 아이를 보고 정말 슬펐죠. 아이가 아픈데 어린이집에 맡기고 올 때면 일에 집중이 잘 안 됐어요” 그나마 아이를 돌봐주던 친정어머니까지 몸이 안 좋을 때면 아이를 맡아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뒀다. 그러던 중 은행의 시간제 일자리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올 초 200명의 정규직 채용에 2만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리면서 100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이들은 9주간의 연수과정을 거쳐 지난 9일부터 현장에 배치됐다.

 안씨의 근무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다(30분은 휴식시간). 오후에 4시간 일하지만 정규직 신분이어서 고용이 안정돼 있다. 휴가 같은 복지혜택도 차별 없이 받을 수 있다. 안씨로선 무엇보다 아이를 아침에 돌보다 잠시 어린이집에 맡기고 퇴근 후에 여유 있게 데려올 수 있게 된 게 가장 기쁘다.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아이를 보살필 수 있으니 일할 때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용산전자금융센터에서 근무하는 김륜아(29)씨는 1년 전 출산을 한 달 앞둔 시점에 직장을 그만뒀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막 바뀔 시기에 육아 휴직을 하면서 사실상 정규직 전환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제 일자리 채용에 합격하면서 정규직과 육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게 됐다.

 본점 영업부에서 일하는 정현숙(38)씨는 6년 만에 복귀한 경우다. 그는 신한은행 고졸 행원으로 입사해 13년간 근무했었다. 하지만 2008년 자신의 건강이 악화되고 아버지 간병까지 해야 되면서 사표를 썼다. 건강을 회복한 뒤 다시 일할 곳을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한 번 끊긴 경력이 너무 큰 장벽이 됐다. 정씨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다시 직장생활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초조했다. 다시 일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9주 동안의 연수과정을 거쳤다. 동기애도 생겼다. 김륜아씨는 “대학을 갓 졸업한 동기들끼리는 경쟁심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저희는 다 사연이 있다. 각자의 사연이 남 얘기 같지 않아서 많이 울었고 연수 기간에 서로 모르는 것도 알려줬다”고 전했다. 출근 첫날인 9일에도 ‘김 주임, 30만원 입금해봐’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서로 실전 연습을 시켜주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시간제 행원 동기인 세 사람의 목표는 다르다. 안은정씨는 시간제 일자리를 계속하면서 선임 텔러로 승진하고 싶어 한다. 정현숙씨는 방송통신대로 진학할 계획이고, 김륜아씨는 아이를 키운 뒤 풀타임 근무를 희망하고 있다.

 금융권에선 신한은행 외에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이 시간제 행원을 채용할 예정이다. 기업은행은 6월 말 100여 명을 뽑기로 하고 현재 지원을 받아 심사하고 있다. 우리은행도 오는 8월 현장 배치를 목표로 200명을 선발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2015년과 2016년에 각각 200명과 100명의 시간제 행원을 추가로 채용할 계획이다.

안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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