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개혁 후퇴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위원회는 7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재벌 개혁을 원칙대로 추진하되 목표치를 만들어 중장기 계획을 미리 알림으로써 예측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업무보고에서 재벌 개혁에 대해 "투명.독립경영, 공정 경쟁체제가 확립될 때까지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3년간 시장개혁의 추진 성과를 지속적으로 점검.평가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3년 후 독립경영체제가 확립되면 기존 시책을 전면 개편하겠다"고 토를 달았지만 공정위가 원하는 수준이 되려면 매우 강도 높은 개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원하는 시장 개혁의 수준이 어떻게 계량화될지도 관심사다.

◆일관된 개혁 예고=큰 틀은 재벌 계열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 강화와 지주회사제를 통한 지배구조 개선이다. 공정위는 "제 2금융권을 중심으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가 점차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기업집단의 생명보험사 지분은 1998년 42%에서 지난해 52%로, 증권사 지분은 같은 기간 44%에서 52%로 늘었다.

금감위가 금융사 대주주 요건 등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금융회사를 대기업 계열에서 강제로 분리하는 계열분리청구제는 다른 구조적 대안 등을 종합 검토해 신중하게 추진한다는 것이다.

지주회사제 전환 유도는 姜위원장의 작품이다. 지주회사가 되면 지분 구조가 지금보다 단순하고 투명해진다는 취지다.

그러나 세제 혜택 등에도 불구하고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율 등 핵심사안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기업들이 얼마나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김효석 민주당 정조위원장 등은 "자회사 지분율 등을 완화할 경우 군소 재벌의 건전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부 내 진통 예상=이날 업무보고에서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개편을 놓고 재정경제부와 공정위의 시각차가 여실히 드러났다.

공정위 관계자는 "김진표 부총리와 권오규 정책수석 등은 현행 제도를 일관되게 유지해야 하며 장기적으론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인수위에 참여했던 학자들은 예외 축소 등의 공정위 입장을 지지했다"고 전했다.

앞으로 관련 태스크포스팀 활동에서 만만치 않은 진통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지주회사에 세제 혜택을 주자는 공정위 방안에 대해서도 재경부는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재경부는 연결납세제도를 도입하더라도 과세 원칙과 세수 감소 방지를 위해 지주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1백% 보유할 때만 개별 과세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재계 입장=지주회사로의 전환 유도에 대해서는 별 의미가 없다는 시각이 많다.

지난 4일 姜위원장과 4대그룹 구조본부장의 간담회에서 본부장들은 "기업이 효율성 제고를 위해 어떤 기업구조를 택할 것인지는 기업의 자율적인 선택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또 "재무 건전성을 유도하겠다며 출자총액제 졸업제도를 도입해놓고 1년만에 이를 다시 고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재계는 금융회사의 의결권 제한에 대해서도 이렇게 되면 적대적 M&A(인수.합병)를 방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영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