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이냐… 반 지성이냐… 문단에 「민족문학」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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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0년대 초까지 우리 문단에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돼왔던 이른바 「순수와 참여 논쟁」이 최근에 이르러 『민족문학은 반지성적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띠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 논쟁의 발단이 된 것은 민족문학의 이론을 정립한 문학평론가 백낙청씨의 저서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민족적 양심에 입각한 문학의 자세를 주장한 이 평론집은 상당한 방향을 불러 일으켰고 김우창(고대교수) 이상섭(연대교수) 김치수(외대교수)씨 등 평론가들이 이 저서에 대한 비평에 나섰는데 이들은 문학에 있어서의 민족주의를 나쁘게 볼 수는 없지만 민족주의 문학이 역사성이나 현실성만을 강조하다보면 지적인 면을 무시하는 소위 반 지성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견해를 보인 것이다.
특히 김우창씨는 백씨의 문학적 철학관이 『삶에 대한 일체의 지적인 접근을 수상쩍게 보는 태도의 이론적 근거를 이룬다』고 지적하고 백씨가 문학에 있어서의 모든 지적인 행위를 그릇된 생각에서 나온 것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지식인까지도 배격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곧 민족의식 역사의식을 지나치게 중시하다 보니 문학본래의 순수성과 예술성을 너무 가볍게 보게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
백씨의 민족문학론에 대한 이 같은 비판에 대해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는 『내가 생각하는 민족문학』이라는 좌담을 열고 민족문학의 문제점과 방향을 제시하면서 민족문학을 반 지성주의로 보는 일부 견해를 비판했다. 이 좌담에서 평론가 구중서씨는 서구의 순수시 이론이니 <예술을 위한 예술>이니 하는 경향이 역사와 민중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민족문학을 옹호하는 것인데 그것을 반지성, 혹은 반이성주의로 보면 그 견해야말로 반지성,반이성주의라고 공박했다.
한편 백낙청·고은 씨도 『민족문학론이 지성적이 못되고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게될 소지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민족문학이 반지성·반이성적으로 흐를 위험을 경계하는 길은 보다 지성적이기 위해 행동과 실천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것을 더욱 강조하는 길』 이라고 말하여 민족문학을 반지성주의로 보는 견해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민족문학을 옹호하는 백낙청 씨 등의 입장이나 그것이 자칫하면 지성과 이성에 반대되는 경향에 흐를 수도 있다는 김우창씨 등의 입장은 제각기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문단에서는 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입장의 부딪침이 중요하게 보여지는 까닭은 최근까지 있어온 순수·참여논쟁에 있어서 순수 측이 지나치게 예술의 독자성만을 주장하여 비판받아온 반면 최근의 민족문학 논쟁은 민족문학론이 지나치게 역사성· 현실성을 강조하여 비판받는, 이를테면 뒤바뀐 입장의 느낌을 주고있기 때문이다.
이름을 밝히기 꺼리는 한 비평가는 『이에 대한 좀더 진지하고 적극적인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거시적인 안목에서 백씨 등의 민족문학론이 정치적 혹은 경제적으로 학대받는 사람을 옹호하고 있다는 입장에는 공감이 가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역사의식·현실의식에 치우치다 보면 문학의 자유로움이나 상상력을 굳어버리게 만들 염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어째든 민족문학론이 지성이나 이성을 외면한 문학론이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문제는 대다수의 문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어 조만간 커다란 「이슈」로 제기될 듯한 전망이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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