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혼 문턱 높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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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선임기자

“자기 전 아빠가 뽀뽀해 줄 거예요? 거기 싫으면 다시 와도 돼요?” “전화하는 거 잊지 마세요.”

 일곱 살 빌리는 엄마(조애나) 집으로 옮겨가기 직전 아빠(테드)에게 펑펑 울면서 이렇게 매달린다. 1979년 개봉된 가족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의 끝부분의 한 장면이다. 아이는 엄마가 집을 나가면서 상처를 입었고, 양육권 소송 끝에 엄마 집으로 강제로 가게 되자 이렇게 아픔을 표현한다. 조애나는 고심 끝에 아이를 데려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아이 방의 구름 그림 벽지가 자기(조애나) 집에는 없다면서.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고승덕 후보의 패인은 딸 캔디 고의 글이다. 고 후보 이혼 당시 캔디는 15세. 큰 상처를 받았을 게다. 그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간 드러난 것만 보면 파동의 진원지가 이혼인 것으로 짐작된다. 지난해 이혼은 11만5300건이다. 평균 혼인생활 기간은 14.1년,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가 51.2%다(통계청 자료). 어린 자녀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초·중·고생 9396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부모 가정 아이의 가출 경험(28.5%)이 양친 가정(21.1%)보다 높다. 따돌림을 당했거나 학업을 중단하고 싶은 생각을 한 경험도 마찬가지다. 비행청소년 102명 중 부모가 이혼·별거·가출한 경우가 42명에 달한다(『비행청소년의 비행촉발요인에 관한 연구』, 강혜자). 부모의 사망보다 이혼이 애들에게 더 고통을 준다는 전문가 의견이 있을 정도다.

 한국의 이혼제도에는 아이가 없었다. 부모 위주였다. 2008년 민법이 바뀌면서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이혼을 석 달 미루는 숙려(熟慮) 제도가 도입됐다. 이 덕분에 협의이혼 취하율이 올라가긴 했다.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미국은 법원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우리는 숙려기간에 상담을 권고하는 정도에 불과하고 인프라도 부족하다. 미국 플로리다주는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심리학자·정신과의사 등에게 상담을 받도록 명령한다. 호주는 12개월 이상 별거해야 이혼이 가능하다. 독일도 1년 별거를 의무화하고 법원 판결에 의해서만 이혼할 수 있다.

 우리도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상담을 의무화해야 이혼을 줄이고 부모와 아이의 상처를 줄일 수 있다. 미국에는 수천 개의 이혼 관련 교육프로그램이 있다. 우리는 이혼 과정에서 상대의 잘못을 후벼 판다. 서로 원수가 되면 아이의 상처가 깊어지기 마련이다. 선진국처럼 이혼을 어렵게 하되, 어쩔 수 없다면 상처를 줄이게 유도해야 한다.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