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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1)<제자 조연현>|<제58화>문학지를 통해 본 문단비사 50년전 "문예"지 전후(44)-지방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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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5면

현대문학사의 두번째 문인극에는 최인호 오혜령 김혜숙 김국태 최원 오찬식 김용운 등 젊은 작가들과 함께 박영준(작고) 황순원 최정희 세분도 출연했는데 이분들은 한두 마디 대사만 하고는 곧 퇴장하는, 얼굴만 잠깐 내보이는 그런 역할이었다. 이 세분을 출연케 한 것은 문단의 대가급에서도 참가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 였다.
「레퍼터리」는 유신종씨의 『양반전』으로 아주 「코믹」한 것이었다. 한국일보 강당에서 연 3일 동안을 했는데 성황이었다. 공연은 성황을 이루었지만, 수지 면에서 보면 형편없는 결손이었다. 문인극을 해서 두번이나 손해를 보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그 결손을 보충하기 위해서 지방공연에 나서기로 했다. 물론 문인극을 해서 손해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유현종씨에게 두번이나 속았다고 했지만, 그것은 애교로 한말이고 처음부터 겸손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결손이 적었으면 하는 희망이 있었으므로 혹시 지방공연을 해서 그 결손이 조금은 메워질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던 것이었다. 문화의 지방교류도 이룩할 겸.
그래서 춘천과 제주도에서 공연을 갖기로 했다.
춘천에서는 김영기씨의 주선으로 강원일보의 책임아래, 제주도에서는 최현식씨의 주선으로 제주일보사의 책임아래 공연을 가질 수 있었다. 지방 신문사에서 주최를 하면 대개는 수지를 맞출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었다.
춘천에서의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낮과 밤 두 차례의 공연을 가졌는데 두 차례 다 만원이었다.
그러나 신문사도, 우리도 이익은 없었다. 겨우 손해는 안본 그런 정도였다.
입장료가 쌌기 때문에 초만원을 이뤄도 이익은 있을 수가 없었다. 이익은 제주도에서 보아야만 했다. 최현식씨에게는 이익이 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달라는 전갈을 보냈다. 제주신문사 편집국장인 그는 세밀한 계획아래 표를 완전히 예매하는데 성공했다. 남은 일은 우리 일행이 가서 공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만단의 준비가 갖춰져 있었다.
공연이 예정된 하루 전날 내가 먼저 제주도에 내려갔다. 성공은 확실히 보장되어 있었다. 다음날의 공연만 기다리고 있는데 그 공연날 기상관계로 비행기가 뜨지 않았다. 서울에서 와야할 일행이 제주도로 올 수가 없게 되었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신문에 예고했던 공연은 유산되고, 표를 예매했던 신문사에서는 표 값을 모두 되돌려주었다. 공연준비를 해놓은 제주신문사만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되었다.
기왕에 제주도에 간 나는 3일 동안 관광만 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현대문학사의 세번째 문인극은 얼마전 실험극장에서 있었다. 「레퍼터리」는 윤조병씨의 『술집과 한강』이었는데 김정웅 김청작 박기동 이병원씨 등 젊은 작가들이 출연을 하고 연출은 김국태 편집장이 맡았다. 김용운 유홍종 감태준씨 등 젊은 작가들이 무대감독·효과·소도구 등의 일을 도와주었다. 이것 역시 공연은 성공이었지만, 백만원 이상의 손해를 봤다.
한국문인협회에서도 몇 년전 문인극을 한일이 있었다. 호영송 작 『환상부부』를 유현종 연출, 정연희 문정희 권일송 이종환 구경서 제씨의 출연으로 4일 동안이나 했었다. 이 공연은 문인협회가 주최여서 초대손님이 유료 입상자보다 훨씬 많았다.
20년대와 30년대에도 우리 문단에 가끔 문인극이 있었다. 해방이후에도 이렇게 문인극이 심심찮게 이어지고 있는 것은 역시 그 전통의 계승일까.
문인들이 극을 하는 것은 연극적 경험을 얻자는 것보다는 다분히 심심풀이여서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것은 대본의 선택에서도 그렇고 출연자들의 태도에서도 그랬다. 직업적인 배우 뺨칠 정도의 연기력을 보여준 문인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것은 하나의 여기의 시험이나 발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연극이고, 문학이고 제각기의 전공이 있는 이상 문인극은 그렇게 공연되어서 조금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연극교수인 김정옥씨가 몇개의 문인극을 보고 문인들이 하는 연극이니 뭔가 독자적인 기풍이나 「스타일」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기성연극의 아류거나 장난 삼아 하는 것 같은 것은 문인답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을 했다. 이상적으로는 김 교수의 말이 옳지만, 연극전문가에게 대해서도 그것은 아주 엄숙한 요구가 되는 것이 아닐까. 문인극에 대해서 너무 지나친 기대나 요구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닐까.
원래 연극이란 심심풀이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던가. 나의 견문에 의하면 문인극은 그 일에 같이 참여했던 문인들 상호간에 아주 좋은 우의와 감정적 교류를 가져다주는 효과가 있었다.
공동생활 집단적인 행동 등에 관한 무의식적인 훈련이 되는 동시에 서로의 이해와 우정을 깊게 만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용이 가해진다.
무대에서 사랑했던 연기자끼리는 무대 밖에서도 서로 호의적이다. 이종환씨와 손장순씨가 서로 아주 사이가 좋았던 것이 문인극 이후의 일이었던 것처럼. <계속> 【조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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