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불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속어는 그 시대의 거울이다. 세상을 흘겨보는 풍자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해방」과 「6·25」의 시대적 풍랑이 지나자 세인들은 「삼불출」을 꼽았었다. 중국에 망명하면서 장군 하나 못된 사람, 해방을 맞으면서 적산(일본인이 남기고 간 재산) 하나 차지하지 못한 사람, 6·25때 권총 한번 못 차본 사람.
「삼불출」을 뒤집어보면 대체로 1950년대를 활보했던 사람들의 면면이 눈에 선하다. 새삼 낡은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것 갈아 고소를 짓게된다.
한 연대가 지나 1960년대엔 증보판 「이불출」이 추가되었다. 미국 유학 가서 박사 못된 사람, 4·19후에 「대모」한번 못 해본 사람. 역시 이 「이불출」도 그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혼돈의 시대」였다고나 할까.
그 무렵 대학가에서 「ABC」라는 「슬랭」도 유행했었다. 『에이, 보기 싫어!』의 「알파벳」약자. 「불출」자의 소리 없는 절규라고나 할까. 다시금 한 연대가 지나 요즘은 개정판 「오 불출」이 등장했다. 어디 그 면면들을 살펴보자. ①「아파트」특혜 한번 못 받은 사람 ②「코인」(사학대회기념전화)하나 못 가진 사람 ③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공연 초대장 하나 못 받은 사람 ④중동구경(건설업자 초청으로)한번 못 해본 사람 ⑤정부주관 특수행사(「준비」사항)초대에 빠진 사람.
이들 개정판 「오불출」은 누구나 자원할 수 없는 것이 특색이라면 특색이다. 이번 「아파트」특혜분양사건만 하더라도 어디선가 재치 있고 기발한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시대의 「참모」들이 「좌고 우면」과 「심사숙고」와 철저한 「케이스·스터디」끝에 작성해낸 「리스트」가 미리 준비돼 있었던 것이다.
그런 영광의 「대열」에 끼게된 사람들 중엔 가문의 명예로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한 시대를 주무를 수 있는 자신의 역량과 지위를 「공인」받은 셈이니 말이다. 돈주고도 못사는 그 「형광」.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명예로운 불출」도 있는 것에 우리는 안도감을 가질 수 있다. 가령 「아파트」특혜의 경우.
한순간의 「이성적 결단」으로 불출을 자청한 「출자」들도 있는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불출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우리의 벗이며 이웃이다. 「출」과 「불출」의 그 종이 한 장 사이를 이들은 용케도 분별한 것이다. 세상엔 그런 「불출자원자」도 있는 것에 우리 모든 진짜 불출생들은 위안과 긍지를 찾을 수 있다. 자, 박수 한번 쳐 줄만도 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