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아마2단과 두 점 바둑 감수-대국신청 몰려 진땀 빼기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미국 땅에 도착하여 새삼 놀란 것은 우리 교포들, 특히 20∼40대 층에 바둑보급이 잘돼있다는 사실이다. 이민 온 사람들의 대부분이 20∼40대 층이었는데 가는 곳마다 열렬한 바둑 「팬」들이 많아 극진히 환대해 주었다.
어떤 사람은 미국여행 중 양식한번 제대로 먹어볼 겨를이 없었다고 하지만 그만큼 국세의 해외진출이 피부로 느껴져 즐거웠다.
더구나 도처에 뿌리박고 있는 바둑「팬」들로 여간 흐뭇한 게 아니다. 이곳 「보스턴」에 연수차 와있는 교수와 공무원들도 모두들 유단자 급이었다.
여기 와서 비로소 알게된 문일룡 초단은 경복 51기생인데 중퇴하고 이민 와서 「하버드」대학 동양학과에 재학중인 갓 스물 정도의 젊은이다. 그는 여러모로 친절하게 안내까지 해 주었을 뿐더러 학생이어서 비교적 시간이 있을 것 같아 앞으로 이 고장의 바둑계 소식을 전
해달라는 부탁을 했더니 서슴지 않고 한국기원 통신원역할을 맡아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보스턴」에 도착한 다음날인 5월4일 낮에는 이홍식 이사장과 필자는 우선 「하버드」대학의 위용과 독립공원을 두루 살펴보았고 또 밤에는 기원에 나가 시범대국을 가졌다.
미국인들의 사범 격인 우리교포 한사람을 상대해 2점으로 시범대국을 시작하면서 『두 점만 놓다니 불손한 친구로구나』하는 불만도 있었지만 미국인들의 사범 격이란 체면을 세워주는 뜻에서 2점으로 감수했다.
그러나 『비록 내가 늙고 피곤하다 하지만 「아마추어」로서 두 점이라니…. 본때를 보여주어야겠다』하는 언짢은 생각이 끝내 가시지 않았다.
이분에게 평소 지도 받는 한편 늘 당하기만 하던 「스키프」회장을 비롯한 수많은 미국 「팬」들은 『우리 스승이 어떻게 싸우느냐』하며 긴장한 표정들이었다. 역시 2점 치수는 아니었던지 결과는 필자의 불계승으로 끝났다.
이 광경을 목격한 미국「팬」들은 너도나도 한판씩 배우겠다고 신청했으나 이날 밤은 너무나 깊었고 또 피곤하여 다음날 두기로 했다. 희망자가 하도 많아할 수 없이 「스카프」회장이 인선을 했다는 후일담이었다.
미국 바둑「팬」들도 「프로」와의 대국은 응분의 사례를 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스키프」회장은 대국에 앞서 『사례는 어떻게 해야되겠습니까』하고 정중하게 물어왔다.
뜻밖의 질문이지만 그 성의가 고마워 『이번에는 한미친선 교류이므로 사례문제에 대해는 신경을 안 쓰셔도 된다』고 사절했더니 고맙다는 표정들이었다.
지금까지의 전례로 보면 일본기사들에게서 배울 때 한판에 10「달러」정도의 지도료를 내고 한꺼번에 몇판씩 두었던 모양이다.
일본 기사들이 외국에 나갈 때는 일본기원에서 여비에다 보급 비까지 지급하므로 별도로 지도료를 받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체로 한사람에 10「달러」정도의 싼값으로 한꺼번에 몇 사람씩을 상대했던 모양이다. 이번 필자의 경우는 모든 비용을 이홍식 이사장이 전담했으므로 미국「팬」들에게는 무료로 「서비스」해도 무방한 처지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