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줄어든 발행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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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집계한 올해 6월까지의 도서발행실태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종류·부수가 모두 후퇴했다. 적어도 5년 동안에 없던 기현상이다.
검인정 교과서 파동의 후유증에서 신음하던 지난해조차 신장세를 보였던 출판계가 올들어 『책다운 책을 낼 수 없다』, 『책 내기가 두렵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제작비는 폭등해도 한정된 독자를 의식해서 책값만은 그만큼 올릴 수 없다는 고충을 안고 방황한다.
실제로 인쇄·조판·제본 등 제작비와 인건비가 1년전보다 2∼2·5배로 올랐고 거기에 10%씩의 부가세가 따라붙었다.
또 인쇄소나 제분소는 그나마 공원부족으로 책을 제때에 만들어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저임금지대」로 알려져 온 이 분야의 인력이 고도성장경제가 낳은 고임금지대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일손조차 모자라고 있다.
전국50개 출판사를 대상으로 출협이 조사한 결과도 이런 식이다. 겨우 12·5%만이 제작비인상만큼 책값을 올리겠다고 했고 1백%인상으로 끝내겠다는 출판사가 4·1%.
나머지 83·4%가 10∼50%인상계획을 갖고 있는데 그 중에는 30%인상예정이 전체의 37·5%로 가장 많다. 절반이상이 인상시기를 연내로 보고 있다.
출협의 이 조사는 또 제작경비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물었는데 30·3%가 『줄일 방법이 없다』고 했고 22·3%가 『제작량을 제한하겠다』고 했다. 책을 덜 내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이러한 「방침」은 지난 5월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출협의 납본 집계에 의하면 4월까지 늘어나던 도서 발행량이 5월 들어 줄기시작, 상반기누계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훨씬 못 미친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상반기에 5천8백59종 1천1백36만여부를 출판(학습참고서·아동만화제외)했던 출판계가 올해는 5천7백26중 1천59만9천여 부에 그쳤다. 이미 갖고있던 지형으로 찍어낸 중판을 빼면 초판에서는 더 큰 차이가 난다. 지난해 3천6백9종 6백65만7천여부를 출판한데 비해 금년에는 3천1백92종 5백40만9천여부다. 분야별로 보면(표) 초판이 늘어난 것은 기술과학분야뿐이다. 이같은 전체적인 부진에도 책1권 평균정가는 지난해 1천5백84원에서 올해 1천5백90원으로 6원이 오르는데 그쳤다.
5백∼1천부 정도가 팔리는 「좋은 책」을 내던 출판사나 기껏 3천부 정도 팔리던 책은 지금 상태로는 낼 수가 없다는 진단이다. 문화의 축적을 의미하는 기획출판이나 오랜 기간이 걸리는 연구의 결정으로 책을 내기가 어렵게 됐다. 5천부 이상이 팔린다는 확신이 없으면 적자라는 이야기다.
일조각의 한만년 사장이 자전거를 타고 인쇄소와 제분소·서점을 왕래하던 25년전 창업당시로 돌아가야겠다는 각오나, 미술서만 90여종을 내놓은 열화당의 이기웅 사장이 20여종의 신간원고를 준비해 놓고 출판을 망설이고 있는 모습에서 오늘날의 출판계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연세대 등 전국 16개 대학 출판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교수들의 연구의욕을 북돋울만한 책을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1만∼5만 부가 팔린다는 이른바 「베스트셀러」나 여기에 따라가겠다는 아류의 책이, 그리고 싸게만 만든 저질도서가 「호황」을 누리는 출판계를 혼란의 시대로 보는 출판인이 많다. 몇 달만에 수명이 끝나는 「인스턴트」도서를 제외하면 지금 「문화 축적자」「문화선도자」로서의 모든 출판사가 『책을 내느냐』『주저앉느냐』는 기로에 서있다. 출협이 「국가도서개발위원회」설치를 요구하면서 국가적 관심을 촉구하는 것도 이런데 그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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