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수석부사장“이제는 친구처럼 다정하게 말을 걸고 토론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야기할 때다. 앞으로 20년 안에 자연어(인간의 말)를 이해하고, 스스로 생각하며 학습하는 인지 컴퓨터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IBM의 왓슨 솔루션 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랍 하이(55) 수석부사장은 최근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인지기능을 갖춘 인공지능 컴퓨터는 증기 기관차나 컴퓨터의 발명처럼 인류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1968년 개봉한 공상과학(SF) 영화의 고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인공지능 컴퓨터 ‘할9000’이 머지않아 현실로 나타나는 셈이다.
인공지능 컴퓨터는 멀리 있지 않다. 올 3월 11일 세계 최대의 창조산업 축제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가 열리고 있던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컨벤션센터 앞에 빨간색 푸드트럭이 들어섰다. 언뜻 보면 행사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푸드트럭이지만, 실은 인공지능컴퓨터 ‘왓슨(Watson)’이 ‘주방장’으로 변신한 트럭이었다. 랍 하이 부사장은 “왓슨이 뉴욕요리학교(ICE)와 협업을 통해 전 세계 3만 가지 이상의 요리법과 맛의 화학작용을 학습한 뒤, 600경(京:경은 조의 만 배) 가지의 음식재료 조합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고 소개했다.
IBM이 올 3월 공개한 ‘인지요리(cognitivecooking)’ 푸드트럭.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이 주방장이다. [사진 IBM]IBM이 만든 왓슨은 2011년 2월 미국 ABC방송 퀴즈쇼 ‘제퍼디’에 나와 퀴즈달인들을 단숨에 물리치면서 관심을 끌었다. 종이에 구멍을 뚫은 ‘펀치카드’를 이용한 컴퓨터가 1세대였다면, 프로그래밍된 대로 명령을 수행하는 최근까지의 컴퓨터는 2세대다. 왓슨은 빅데이터처럼 방대한 데이터베이스(DB)를 바탕으로 추론하고, 스스로 학습하면서 진화하는 3세대 ‘인지(cognitive) 컴퓨터’다.
랍 하이 부사장은 애플의 음성인식 프로그램 ‘시리’와 왓슨이 뭐가 다르냐는 질문에 “시리는 제한된 명령어에 따라 몇 가지 작업을 수행할 뿐 왓슨처럼 질문의 문맥을 이해해 사람처럼 추론하고 답을 구해내지 못한다”고 답했다. IBM의 창업자(토머스 왓슨)의 이름을 딴 왓슨 컴퓨터는 2011년 등장 이후 진화를 거듭해 왔다. 당시 큰 방을 가득 채우던 몸집은 이제 피자상자 3개 크기로 줄어들었다. 반면 성능은 25배나 향상됐다.
2012년엔 텍사스대 MD앤더슨 암센터와 함께 ‘전문관리자 프로토타입’ 서비스를 시작했다. 왓슨이 암에 대한 의학정보와 암 환자의 의료 및 임상기록, 실험실 데이터 등의 자료를 학습한 뒤 의사들의 암 관련 질문에 사람의 언어로 답해주는 의료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랍 하이 부사장은 “왓슨의 등장으로 의사의 오진(誤診)이 크게 줄고, 진단은 빨라지게 됐다”며 “왓슨은 새로운 학술논문·임상연구 등 개개인이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학습한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각종 기업의 방대한 빅데이터를 짧은 시간 안에 분석해 고객서비스와 마케팅·영업 등 주요 부서의 업무에 도움을 주는 ‘왓슨 인게이지먼트 어드바이저(WEA)’ 시스템도 선보였다. 또 올 3월엔 뉴욕지놈센터와 함께 유전자 의학 시대를 앞당기기 위한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씨티그룹도 최근 왓슨 기술을 이용해 고객에게 더 효율적이며, 간편한 인터넷뱅킹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랍 하이 부사장은 “왓슨을 금융부문에 적용하면 합리적인 투자와 위험 관리가 가능하고, 의료 부문에서도 난치병 치료와 인도·아프리카와 같은 의료 낙후지역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IBM은 올해부터 ‘왓슨 생태계’ 만들기에 나섰다. 개인개발자와 기업 등 2500명이 왓슨을 이용한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어 낼 계획이다. IBM은 이를 위해 앞으로 수년간 1억 달러(1020억원)를 쏟아붓는다. 랍 하이 부사장은 “조만간 일반 사람들도 스마트폰에서 앱 형태로 된 왓슨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