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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한 자락, 비 한 방울도 활용 요금 안 내도 에너지 걱정 없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우리나라 총 에너지 사용량의 20~25%가 건물에서 쓰입니다. 그 중 75%가 집, 바로 주거공간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입니다.

집에서도 실내온도를 조절하는 냉난방에 무려 70%에 달하는 에너지를 소비하죠. 왜 여름철만 되면 적정 실내온도 캠페인을 하는지 짐작이 가죠?

그런데 에너지를 적게 사용해도 주거환경은 쾌적하게 유지하는 비법이 있답니다. 바로 ‘패시브 하우스’입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주택부분 패시브 하우스 인증을 받은 코오롱글로벌의 ‘e+ 그린 홈’에 엄진용·임성민 학생기자가 다녀왔습니다.

1 코오롱글로벌 R&BD센터의 이규동(왼쪽)차장이 ‘e+ 그린 홈’의 에너지 절약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은진 코오롱글로벌 R&BD센터 주임, 임성민ㆍ엄진용 학생기자. 2 한번 유입된 에너지가 밖으로 빠져 나가지 않도록 관리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패시브 하우스에서 창문은 중요하다. 사진은 밖의 온도가 높으면 액체로 변해 에너지를 흡수하고 온도가 낮으면 고체로 변하면서 열을 발사하는 PCM 창호. 3 코오롱글로벌 R&BD 센터의 김은진 주임이 ‘e+ 그린 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에너지 사용을 수동적으로 하는 주택’이란 뜻의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는 주택에서 소비되는 에너지를 최소화해 짓는 친환경 건축이다. 독일의 볼프강 페이스트 교수와 스웨덴의 보 아담슨 교수가 기존 주택의 에너지 소비량의 20분의 1 밖에 되지 않는 집을 지어 1989년에 소개한 뒤 유럽 전역으로 확대됐다.

4 ‘e+ 그린 홈’은 지붕에 다양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집에서 소비하는 에너지를 생산한다. 5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BIPV 창호를 설치한 2층. 6 ‘e+ 그린 홈’을 옆에서 본 모습. 지붕에 굴곡을 만들어 태양 에너지 생산을 높이고 빗물까지 관리해 화장실 용수나 정원수로 활용한다.

자연을 최대한 활용한 건축 디자인

경기도 용인의 코오롱글로벌 R&BD 센터. 정문을 지나 모퉁이를 도니 두 개의 산봉우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듯한 흰색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e+ 그린 홈’이다. 건물 외벽 한켠엔 넝쿨식물과 이끼가 뒤덮여 있고, 지붕에는 태양열을 모으는 패널과 잔디가 섞여 있었다. 외관부터 여느 집들과는 달랐다. ‘e+ 그린 홈’은 일반주택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25%만으로도 유지가 된다.

“주변의 다른 집들과 방향이 달라 보이지 않나요?” 안내를 맡은 코오롱 글로벌 R&BD 센터의 김은진 주임의 말을 듣고 주변을 살펴보니 ‘e+ 그린 홈’과 주변건물의 방향이 달랐다. 다른 건물들은 도로를 중심으로 나란히 자리를 잡은 반면, ‘e+ 그린 홈’은 15도 정도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패시브 하우스는 자연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주택입니다. 따라서 집을 짓는 지역의 자연환경을 연구해 건축에 반영하죠. ‘e+ 그린 홈’은 정남향 집입니다. 정남향은 태양의 고도가 높은 여름철에는 집 처마에 햇볕이 가려 집안까지 볕이 들어가는 것이 차단되고, 고도가 낮은 겨울철엔 집안 끝까지 볕이 들어가 난방효과가 있어요.”

자연을 최대한 활용한 디자인은 지붕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지붕은 옆에서 봤을 때 알파벳 M자 같은 모양이다. 지붕에 굴곡을 만들어 태양 에너지를 받는 표면적을 최대화한 것이다.

“이 지역의 일조량과 태양의 고도를 분석해 태양광을 가장 많이 모을 수 있는 각도로 지붕의 경사를 만들었죠.”

지붕에는 전기를 생산하는 패널, 온수를 생산하는 패널 등 다양한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태양광 패널이 곧장 지붕의 외피가 되었기에 별도로 지붕을 시공할 필요도 없었다. 이 지붕에서 일반주택에서 사용하는 총 에너지 소비량의 38%에 달하는 에너지를 생산한다. 지붕에서 생산하는 에너지만으로도 집에서 마음껏 쓰는 건 물론, 여분의 에너지까지 남는 구조다. 전기세나 가스비를 낼 필요가 없다.

비 한 방울도 버리지 않는다. 지붕 경사면의 좌우 높낮이를 달리해 비가 오면 빗물이 한 곳으로 모이게 만들었다. 빗물은 건물의 지하에 모아뒀다가 변기물과 정원수로 활용한다.

보온병 원리와 흰개미집까지 응용

그런데 ‘e+ 그린 홈’은 어떻게 다른 주택보다 에너지 소비량 자체가 적을까. 대부분의 주택에서는 실내 벽면 쪽에 석고보드 같은 단열재를 넣고 벽지로 마감하는 내단열 방식으로 시공한다. ‘e+ 그린 홈’은 반대다. 콘크리트 외벽에 30㎝ 이상의 단열재를 붙여 에너지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씌웠다. 김 주임은 이를 ‘보온병의 원리’로 설명했다.

“한번 유입된 에너지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시공해서 에너지 효율을 높였어요. 뜨거운 물을 담은 보온병은 물의 열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전도율이 낮은 재료를 사용해 외벽을 두껍게 만들죠. ‘e+ 그린 홈’도 마찬가지입니다.”

김 주임은 창문에 플래시를 비췄다. 창문에 3개의 빛이 반사돼 보였다.

“창문은 태양에너지를 공급받는 곳인 동시에, 열이 많이 빠져나가는 곳이기도 해요. 지금 보시는 창문은 3중 유리입니다. 유리와 유리 사이 빈 공간에는 아르곤 가스를 넣었어요. 공기 밀도를 높여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고안한 것이죠.”

패시브하우스에는 자연에서 발견한 다양한 기술도 적용된다. 대표적인 것이 흰개미집 원리다. 흰개미들은 땅속 집 위로 속이 빈 흙탑을 세운다. 진흙에 침과 배설물을 섞어 만든 탑은 땅속에 산소를 공급하고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흙탑의 아래와 위에 구멍을 뚫어 아래로는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받아들이고, 위로는 안에서 사용한 공기를 올려보낸다. 흰개미들은 탑의 높이와 구멍의 개수를 조절해 내부온도를 항상 26~28도로 유지한다. 찬 공기는 아래로 가라앉고 더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는 대류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아프리카 잠바브웨에는 이런 흰개미 집의 원리를 이용해 자연냉방으로만 평균 24도를 유지하는 건물이 있다. 건축가 믹 피어스가 설계한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다. 그는 남과 북을 향해 마주보는 9층 건물 두 동을 짓고 그 사이에 덮개를 씌워 공기가 쇼핑센터 안에서 순환하도록 만들었다. 아래쪽에는 외부 공기가 유입될 수 있도록 팬을 설치했다. 기온이 떨어지는 밤에 차가운 공기를 아래쪽에서 빨아들여 온도가 올라가는 낮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코오롱 글로벌 R&BD 센터의 이규동 차장은 “땅속 온도는 계절에 상관없이 평균 15도를 유지한다. ‘e+ 그린 홈’은 그에 착안해 냉난방을 조절하는 쿨튜브 방식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쿨튜브는 ‘e+ 그린 홈’으로 들어오는 외부 공기를 지하에 묻힌 관에 통과시켜 지열로 데우거나 식힌 뒤 집 안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장치다. 거기에 태양열 에너지를 활용해 여름에는 쿨튜브를 더 식혀 냉방에 쓰고, 겨울에는 데워서 집을 따뜻하게 한다.

이 밖에도 딱정벌레의 등껍질에 맺힌 물방울의 원리를 활용해 습도를 조절하는 쿨라디에이터, 연꽃의 자연 정화 기법에서 착안한 ‘스스로 청소하는 외벽’ 등 생체 모방을 이용한 기술이 ‘e+ 그린 홈’ 곳곳에 숨어 있다.

빗물 저금통
빗물 저금통(저장시설·저장탱크)은 관로를 이용해 저류조에 빗물을 모았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장치다.

모은 빗물을 정수 처리 과정을 거쳐 텃밭과 화장실, 청소 등에 쓰면 물 절약에 도움이 되고, 집중호우 때는 수해 방지 효과도 볼 수 있다. 서울대 공과대학은 지하에 빗물 저금통을 설치, 전체 사용하는 물의 34%를 빗물로 충당해 연간 240만원의 수도 요금을 절약한다.

건축 단계부터 빗물 저금통을 만든 대형 아파트도 있다. 서울 광진구 스타시티 지하 4층 빗물 저금통에는 3000t의 빗물이 항상 차 있다. 상습 침수 지역이지만 빗물 저금통을 만들어 침수 피해에서 벗어났다.

글=황정옥 기자 ,
사진=우상조 인턴기자 ,
동행 취재=엄진용(경기도 성남 보평초 6)·임성민(경기도 나곡초 4)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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