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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한 통 대가 수천만원 … 검찰 출신 전관, 연 96억 수임도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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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명 6일 만에 낙마했지만 ‘법피아(법조 마피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왜 국민은 법원·검찰 출신 변호사, 이른바 전관(前官)의 고액 수입에 반발하는 걸까.

법조계 안팎에선 단지 서민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고소득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비판받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전직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논평을 냈던 서울지방변호사회 나승철 회장은 “아무리 전관예우가 아니라고 항변해도 국민은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다. 지난 5월 서울변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0.7%에 달하는 변호사들이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변호사들도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데 일반 국민은 오죽하겠느냐”고 되물었다.

나 회장은 “법원·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이 막대한 수임료를 벌어들이는 것은 공직경력을 이용한 사익추구”라며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소득을 올리는 전관 출신 변호사들 가운데 능력이 출중하고 부지런한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들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능력보다 그들의 배경이나 경력을 본다. 고소득 전관이 비판받는 것은 그들이 현직 시절 위임받았던 공적 권력을 사유재산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병확보 방해로 증거인멸 가능성
검찰 간부 출신 A변호사는 지난해 96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변호사가 개업 초기 높은 수입을 벌어들이는 경우는 자주 있는 일이다. 하지만 A변호사처럼 주요 형사사건을 ‘싹쓸이’하다시피 한 경우는 서초동 법조타운에서도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A변호사가 워낙 성실히 일한 데다 최근 본격적으로 사건수임에 나선 검찰 출신 거물급 변호사가 많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요즘 같은 불황기에 연간 100억원에 육박하는 매출은 변호사업계에서도 깜짝 놀랄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A변호사가 검찰 내 인맥이 넓고 평판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성공률 높은 전관’을 찾는 의뢰인의 수요가 몰린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과연 전관예우는 존재하는 걸까. 변호사 10명 중 9명이 실체를 인정할 정도로 ‘법피아’ 네트워크에 대한 불신은 뿌리가 깊다. 검찰 출신 B변호사의 경험담이다.

“검찰 재직 시절 비리혐의로 수사 중이던 인사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체포영장을 청구하고 체포조를 출발시켰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장검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상황이 복잡하니 직원들을 철수시키라’는 거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가 검찰 지휘부에 전화를 걸어 ‘오늘 체포만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날엔 ‘수사관들의 교통 편의를 제공할 테니 임의동행이나 체포 대신 자진출석 형식으로 검찰에 나가는 걸로 하자’고 제안해 왔다. 다행히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해 구속 기소했고 실형 선고까지 받아냈지만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했다면 수사를 망칠 뻔했다.”

B변호사는 “피의자가 변호사 수임료까지 횡령하는 바람에 재판 과정에서 당시 변호사 수임료가 공개됐는데, 전화 몇 통을 걸어주고 500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전관 출신 변호사들이 잘 쓰는 카드 가운데 ‘낫 투데이(Not Today)’라는 게 있다. 선임된 지 얼마 안 돼 검찰이 의뢰인의 신병을 확보하면 면이 안 서니, 좀 있다 체포해 달라는 부탁이다. 이 사이 범죄 피의자들은 증거를 인멸하거나 혐의에서 빠져나갈 법리를 개발하는 등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결탁’이 된다”고 말했다.

전관 커넥션은 법원과 검찰을 가리지 않는다. 오랫동안 한 지역에서 근무한 지역법관(향판) 출신 변호사들은 인신구속영장이나 계좌추적 단계에서 법원 후배들에게 유리한 결론을 내줄 것을 부탁한다. 역시 향판인 현직 판사도 자신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편의를 봐준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것이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증언은 곳곳에서 나온다.

검찰 출신 가운데에선 법무부와 대검 간부 출신이 가장 힘이 세다는 게 변호사 업계의 통설이다. 이른바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심리 때문이다. 검찰을 떠났다가도 인사권을 쥔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으로 컴백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장관이나 총장 하마평 단골손님인 이들의 ‘말발’이 가장 잘 먹힌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고위직 출신, 변호사 개업금지” 주장도
‘법피아’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선 ‘극약처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인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관이나 검찰총장·헌법재판관 등 고위 법조인 출신이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강제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개인의 직업 선택 자유를 침해하는 측면이 있지만 이들이 변호사로 활동해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순기능보다 개인 치부에 골몰하거나 사회를 부패로 물들이는 역기능이 더 크다면 변호사 개업을 제한하고 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살도록 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임지봉 교수도 “직업 선택의 자유는 경제적 기본권의 하나이고 경제적 기본권은 수정자본주의체제하에선 필요한 경우, 공익적 목적이 있을 때 최소한 범위 내에서 제한할 수 있다. 국민적 사법 불신 해소라는 공익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퇴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금지법이 그 자체로 위헌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여기에 더해 퇴직 전 1년간 근무한 청에서 1년 동안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도록 한 변호사법 31조를 개정해 수임 금지기간을 3년으로 늘리고 이를 어길 때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개업 3년 이내에 전관예우 논란이 가장 심하고, 실제 자신이 사건을 맡으면서 다른 변호사의 이름을 내거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이를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퇴임한 법원·검찰 출신 인사들이 재직 중 쌓은 경험과 지식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고 공익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전직 고위 법관은 “흔히 전관들이 학교나 저술 활동, 사회공헌사업에 투신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로스쿨은 변호사시험에 대비하기 위한 입시학원처럼 전락하고 있고 공익재단들 역시 법조인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 결국 사회 전반의 성숙과 인식의 전환이 법피아와 전관예우를 근절할 수 있는 근본적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동현·유재연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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