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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동질성이 되레 약점 … 보안만 따져 언론도 회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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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앞줄 왼쪽)이 지난해 8월 임명된 뒤 기자회견장을 나와 걸어가고 있다. 사진 왼쪽이 홍경식 민정수석.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 1999년 6월 김대중 정부는 청와대 민정수석에 김성재 한신대 교수를 발탁했다. 김 수석은 호남 출신도, 법조인 출신도 아니었다. 경북 포항 출신인 그는 한신대 신학과를 졸업한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였다. 참여연대 운영위원,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과는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김 대통령은 ‘옷 로비 사건’이 불거진 이후 “여론의 흐름을 직시하겠다”며 애당초 법조인 출신을 배제했다.

비법조인 출신 민정수석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있었다. ‘부림사건(부산 학림사건)’ 피해자로 노무현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던 이호철씨다.

# 2003년 3월 22일 문재인 민정수석은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독대했다. 국가정보원장 후보인 고영구 변호사에 대한 인사검증 자료를 들고서였다. “그렇게 하죠”라는 대통령의 결심이 떨어졌다. 같은 시각 청와대에선 비서실장 주재의 수석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문희상 비서실장은 “문재인 수석은 왜 없느냐”고 물었다. 당시엔 비서실장이 모를 정도로 인사 검증에 대해선 민정수석의 독립적인 역할이 보장됐다.

DJ, 옷로비 사건 후 법조인 배제
2014년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실과는 다른 풍경들이다. 우선 인적 구성이 크게 차이 난다.

수석을 포함해 1급 비서관급 이상의 민정라인 5명 전원이 법조인 출신이다. 검사 출신이 2명(홍경식·우병우), 판사 출신 3명(권오창·김종필·김학준)이다. 5명 중 4명(홍경식·권오창·김종필·김학준)이 김앤장, 태평양 등 대형 로펌 출신이다.

홍경식 민정수석은 대검 공보담당관, 법무부 법무심의관, 서울지검 형사5부장, 서울고검장을 지냈다. 김기춘 비서실장(경남 거제)과 동향(경남 마산)이자 마산중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검찰 시절 별명은 ‘홍 반장’이었다고 한다. 조직의 군기를 잘 잡았다고 해서다.

경북 봉화 출신인 우병우 민정비서관은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장, 부천지청장을 지냈다. 2009년 대검 중수부 1과장 근무 당시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사했다.

경북 안동 출신인 권오창 공직기강비서관은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등을 지낸 뒤 김앤장에 들어가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이사와 방송통신심의위원 등을 지냈다.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법·정치 분야 발기인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여론과 법의 갈등과 소통을 설명한 『여론과 법, 정의의 다툼』을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김종필 법무비서관은 대구 출신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친일행위자 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하고 황지우 시인의 교수직 박탈 취소 청구 소송에선 원고패소 판결을, 만화가 이현세씨의 『천국의 신화』에 대해 음란성이 높다며 벌금형을 내리는 등 보수적 판결을 했다. 하지만 이들 재판은 항소심에서 파기 환송되거나 뒤집히기도 했다.

김학준 민원비서관은 서울 출신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기업 형사분야, 영업 비밀 소송과 인사·노무 관련 소송 분야 전문가란 평이다.

이들 5명 중 4명이 서울대 법대를 나왔고 3명이 TK(대구·경북) 출신이다. 마산 출신까지 포함하면 4명이 영남 출신이다.

이들 중엔 자산가도 있다. 홍경식 민정수석의 재산은 25억4700만원이다. 37억5900여만원을 신고한 김기춘 비서실장과 함께 청와대 안에서도 재산이 많은 편이다. 우병우 민정비서관, 권오창 공직기강비서관, 김학준 민원비서관은 5월에 청와대에 합류해 아직 재산이 공개되지 않았다. 이 가운데 특히 우 비서관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은 “수백억원대 재산을 갖고 있는 사람”(원내대변인 논평)이라는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공직기강비서관 밑에는 검찰·국세청·경찰·국정원 등에서 파견된 인력 15명이 근무한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취임 초기 인사 검증 부실 비판을 받을 때의 9명에 비해 6명 늘었다. 이명박 정부 때의 11명(이명박 대통령 퇴임 하루 전인 2월 24일 기준)에 비해서도 4명 많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는 현 청와대와 조직이 달랐다. 민정비서관실은 민정1(9명)·2(11명) 비서관실로 나뉘었고, 감찰1팀(9명, 청와대 외부 감찰), 감찰2팀(10명, 청와대 내부 감찰) 조직이 따로 있었다. 반면 현 청와대는 감찰1·2팀을 따로 두지 않고 각각 민정·공직기강비서관실에 그 기능을 맡겼다.

결국 전임 정부의 ‘공직기강+감찰2팀’(21명) 인력과 비교하면 여전히 6명이 적다. 21명이 근무하는 민정비서관실도 ‘민정1·2+감찰1팀’(29명)에 비해 8명이 적다. 민정라인의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민정·공직기강 인력이 인사 검증 수요가 적었던 이명박 청와대의 말기에 비해 14명이나 줄어든 것이다.

적은 인력으로 다양한 평판 조사를 하기엔 한계가 있다. 주요 인물을 검증할 때 “평판과 신망은 밑바닥을 훑으면서 체크한다는 게 원칙이었고, 이를 위해 말단 공무원까지 접촉했다”(과거 정부 민정수석실 관계자)고 하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여력이 없다고 한다.

과거 정부선 수석이 대통령에 대면 보고
민정수석실 스스로도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홍경식 수석은 기자들이 접촉하려 해도 만나거나 연락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여기엔 청와대 내의 보안 제일주의가 제1요인으로 꼽힌다. 일각에선 홍 수석이 ‘그림자 보좌’를 중시하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스타일에도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상명하복 문화가 강한 검찰 출신이므로 김 실장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홍 수석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주로 문서를 통해 보고하거나 필요하면 김기춘 실장을 통해 의견을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정부에서 민정수석이 거의 매일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했던 것과는 다르다. 이는 홍 수석이 박 대통령과 직접적인 인연이 그리 두텁지 않다는 것과 무관치 않다. 홍 수석은 김 실장의 천거로 발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민정수석은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고, 대통령에게도 소신껏 목소리를 내야 하는 자리다. 과거 정부에선 그런 역할을 하는 민정수석이 가끔 있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민정 업무를 담당하던 한 인사는 김 전 대통령을 수시로 독대했다. 청와대 관저는 물론 수영장에서도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자리에서 구체적인 인사안에 대한 다양한 반응과 평가를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시스템으로 확립하려면 다양한 인적 구성으로 내부 견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안철현 경성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한국현대정치사』 등에서 “노무현 정부가 2003년 문재인 민정수석-정찬용 인사보좌관으로 업무를 나눈 것은 교차 점검으로 객관성·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부적으로 민정수석은 영남, 인사수석은 호남이라는 원칙도 정했다”고 설명했다.

추천과 검증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2006년 민정수석을 지낸 전해철 의원은 “아무래도 추천하는 사람은 검증에 소홀해진다. 추천과 검증을 각각 다른 곳에서 담당하게 하고, 다양한 수석들이 참석하는 인사추천위원회에서 토론 끝에 나온 결론을 대통령이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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