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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연구논문 시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임강사 이상의 대학교수들에게 의무적으로 매년 1편씩「연구논문」을 내도록 한 75년이 후, 유독 지방대학들에서「논문시비」가 많이 일어난 것은 꼭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표절이다』『저질논문이 많다』등의 시비는 바로 오늘 지방대학의 가장 아픈 것,「교수의 질적 문제」와 직결돼있기 때문에 더 심각하다. 뿐만 아니라 그 논문을 쓰고 안 쓰고가 교수의 지위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물의」와 악순환까지 부르고 있다.

<유독 지방대만 물의>
지리적 잇점을 살려「사회봉사」와 직결되는 연구활동을 하게 마련인 지방대학이 의욕에 비추어 그 연구수준이 낮다는 문제를 빚는 것은 이런 교수사회일반의「아픔」과 연결된다. 계속되는 시설확충과 기재도입에도 아직 미흡한 연구환경, 가뭄에 콩 나듯 교수들의 연구 의욕을 해갈시키기에는 부족하기 만한 연구비, 그리고 학생지도와 인간관계 등 연구 외적활동의 중압감등 교수들이 연구에만 몰두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다.
원광대 민속연구소를 만들어 이리에서 두 차례의 국제민속「세미나」까지 여는 등 활동이 활발했던 김태곤 교수가 서울(경희대)로 자리를 옮긴 가장 큰 이유가『학술정보를 신속하게 입수할 수 없다는 불편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외국에서 간행된 학술「저널」은 물론이고 국내 각 연구기관에서 발간되는 학회지를 구입하기도 힘든 형편이고 보면 연구에 반드시 필요한「자극」이 없어 나중에는 스스로 뒤떨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초조감마저 생긴다는 고백이다.
또 지방대학 교수들이 신경 쓰는 일 중에 하나가 연구비 배정. 문교부에서 대학별로 배정되는 학술연구조성비에 기업체의 의뢰로 떨어지는 연구 용역비, 산학협동재단이나 국내외 문학재단에서 베푸는 연구비 등이 어떤 교수에게 얼마나 배정되는가 하는 게 학기초만 되면 교수들의 주요 관심사가 된다.
기껏해야 1백 만원 안팎이지만 그래도 우선 이것저것 도서구입이나 외상비를 갚을 수 있는 목돈은 되기 때문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서울의 대학과는 달리 한 대학에 10여명 정도밖에 혜택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자극」지나쳐 초조감>
지방대학이기 때문에 특히 느껴야 하는 파벌의식도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신경 쓰이는 일 중의 하나. 연구방향의 차이에서 오는「에콜」(학파)과는 다른 1차원적「섹트」의식 이다. 어떤 대학 출신이며 어느 실력자의 후원을 받고있는가 등 고고해야만 할 학자에게는 낮 간지러운 문제지만 어쩔 수 없다.
이같이 잡다하고 신경 쓰이는 일들 속에서 연구에만 몰두하기란 난중지사. 그래도 매년 꼬박꼬박 논문을 써내야 하니 졸속화·부실화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교수자신들의 진단이다.
논문의 기본형식조차 못 갖춘 수준이하의 D급 논문에서부터, 여기저기에서 필요한 부분만 갈라내어 얽어놓은 발췌논문, 한편으로 끝나지 않는 미완성논문, 「시리즈」논문 등.
부실 논문 때문에 지방대학가를 떠들썩하게 한 대표적인 예가 충남대 김 모교수의 논문 표절사건이다.

<무서운 제자들의 눈>
쓸거리가 없으면 안 써야되는데「공부가 생활수단」이기 때문에 생긴「에피소드」의 하나.
그러나 이 사건으로 교수들은 논문 작성하는데 더욱 고심하게 되었다. 학생들이 교수들의 논문을 샅샅이 읽어보는 것이 유행처럼 됐다. 김기동 교수(영남대)는『이제 논문의 질도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특히 76년부터 실시된「교수 재임명」이 바람도 지방대학에선 연구와 논문에 상당한 비중이 갔기 때문에 질을 높이는데 공헌했다.
실시 첫해 연구실적의 부진으로 대학을 물러난 무능교수가 전체 탈락교수 69명의 63%인 62명이나 됐는데 지방5개 국립대 에서 이들 탈락자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경북대9, 전남대9. 충남대4, 전북대2, 부산대l) 는 사실이 더욱 부채질을 한 셈이다.
문교당국이 지방대학교수의 질에 대해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고「연구논문」에 얽힌 시비는 이런「표절」·「저질」문제 외에도 많다. 지방 모 의대교수는 75년에만 편 당 60만∼1백인만원씩 받고 박사학위 논문을 7편씩이나 대작했다는 얘기가 있다. 교수들의 논문시비에 가장 민감한 측은 역시 학생들이다.
『공부 안 하는 교수님은 학생들도 무시해요. 몇 십년 된 강의「노트」가 전가의 보도는 될 수 없지 않아요?』노정빈 양(전남대·불문과2년)의 따끔한 일침이다.
치열한 긴장감으로 연구의 열기를 늦추지 않으려는 구도적 자세를 그들은 바라고 있다. 연구소의 숫자가 는다고 해서, 발간되는 논문집이 아무리 많다고 해서 지방 대학의 수준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대학의 연구성과를 알리는 생명 있는 논문을 단 하나라도 찾아낼 수 없다면「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방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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