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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직전까지 도끼질하는 18세 임신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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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의 집 앞에서 장작을 패는 필자.

마야를 만난 건, 2년 전 네팔 동부 지역 칸첸중가(8586m)로 가는 도중이었다. 칸첸중가 베이스캠프 트렉(Trek)은 해발 1000m에서 시작해 5143m 베이스캠프까지 먼 거리를 지나는 동안 수십 개의 마을을 통과한다. 무더운 아열대에서 추운 지방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기후는 물론 가옥의 형태, 의식주 등 각기 다른 풍습을 볼 수 있다. 렐렙(Lelep·1750m)은 아직 고산 지역에 진입하기 전, 상록수림이 우거진 마을이었다. 드문드문 흩어진 민가가 있었고, 계곡 건너편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절벽에서는 네팔 원숭이 가족이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5명으로 꾸려진 일행과 스태프 등 20여 명의 무리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허름한 민가의 통나무에 엉덩이를 붙이려는 참이었다. 바로 앞에서 소녀처럼 보이는 여자가 도끼를 들고 장작을 패고 있었다. 네팔 산악 지역에서 집안 일은 여자들의 몫이다. 잔가지로 불을 때서 밥을 짓는 일은 그중 기본이다. 하지만 산에서 큰 통나무를 지고 내려와 장작을 패는 일은 남자들의 일이다.

렐렙 마을의 마야는 달랐다. 허리까지 오는 도끼 자루를 들고 커다란 장작을 패는 중이었다. 하지만 앳된 얼굴에 유난히 작은 체구를 한 처자에게 장작 패는 일은 버거워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마야의 도끼질은 연신 장작을 빗겨갔다.

보다 못한 우리팀의 가이드, 크리슈나가 도끼를 뺏어들었다. 마야는 수줍어했지만, 이내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5명의 일행이 돌아가면서 장작을 패기 시작했다. 처음엔 재미삼아 시작했지만, 어느덧 길 떠나는 일을 잊어버린 듯이 열중했다. 마야와 어머니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아낙 그리고 길 가는 현지인 모두 깔깔대며 웃어댔다. 먼나라에서 여행 온 사람들이 남의 집 앞마당에서 장작을 패고 있으니, 재미있을 만도 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패인 나이 지긋한 아낙이 우리에게 밀크티를 한잔씩 돌렸다. 물소나 양의 젖에 마른 찻잎을 넣어 데워 마시는 차다. 여기에 설탕이나 소금 등을 넣어 마시는데, 추운 날씨에 몸을 데워주는 ‘생명의 차’다. 네팔 산악 지역 사람들은 밀크티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하지만 아낙이 내주는 차는 미지근했다. 아마 나무가 모자라 불을 제대로 때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나이 든 아낙은 마야의 시어머니였다.

“우리 며느리가 임신 중이야. 곧 아이를 낳을 거야” 시어머니가 크리슈나를 보며 말했고, 크리슈나가 다시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젊은 임신부는 당시 열여덟이었다. 그전까지 우리는 마야가 임신부라는 사실은 전혀 눈치재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마야는 도끼질을 할 때부터 줄곧 배 부위에 긴 천을 두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밀크티 한 잔을 깨끗이 비운 후 다시 장작을 패기 시작했다. 사실 쌓아놓은 통나무가 많지 않아 도끼질은 1시간도 안 돼 끝이 났다.

렐렙에서 칸첸중가 베이스캠프까지는 6일이 걸렸다. 하지만 내려올 때는 3일이 걸렸다. 9일 만에 다시 렐렙에 되돌아왔을 때, 마야는 아주 귀여운 딸을 안고 있었다. 갓 구운 카스테라같은 신생아의 볼에 히말라야의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광경은 그지없이 평화로웠고, 보는 이로 하여금 충만한 마음을 갖게 했다.

“당신들이 (장작을 패고) 올라간 그날 밤에 아이를 낳았어” 시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니까, 마야는 출산하기 직전까지 도끼를 들고 일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는 애초 그냥 지나칠 계획이었지만, 다시 도끼를 들었다. 사실 마당에는 땔감으로 쓸만한 통나무가 거의 없었다. 우리는 민가 주변에서 나무를 구해와 땔나무를 만들었다.

마야는 끝으로 내려가려는 우리를 붙잡고 “약이 있냐”고 물었다. 크리슈나가 “아이가 열이 많아 볼에 자꾸 좁쌀같은 것이 생기는데, 거기에 맞는 약이 있냐”고 마야의 말을 통역해 전했다. 그런 약이 있을 리 만무했다. 렐렙에서 병원이 있는 작은 도시까지 가려면 최소 1주일은 걸어야 한다. 거기까지 간다 해도 소아과병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을 등지고 내려왔다.

‘김영주 기자의 히말라야에서 만난 사람’은 김영주 일간스포츠 기자가 해발 8000m가 넘는 히말라야의 14개 봉우리의 베이스캠프를 차례로 걸으면서 마주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김영주 기자의 히말라야 사람들] ⑪ 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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