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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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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성영·권지숙·정호승·이완욱·김창완·김명인 등 젊은 시인 6명이 동인인 동인지 「반지」 제3집이 이달에 창간됐다. 76년에 시작된 이들의 활동은 시단의 상당한 주목을 끌고 있거니와 특히 이번 제3집에서 제창한 『상업 문예지에 기생해온 한국적 시사를 동인지 중심으로 바꿔야한다』는 「새 동인지 시대」선언은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반시」 제3집에 수록된 시 가운데 정호승씨의 『맹인 부부 가수』의 4편은 시대적 상황에 대한 시인의 비애와 갈등을 깊게 그린 작품들이다. 시인의 절실한 감성에서 우러나는 슬픔의 양태가 직설적인 수법으로 노출되지 않고 「알레고리」에 의한 비극적 서경으로 재구성되어 감동적 효과를 보여준다. <눈 내려 어두워서 길을 잃었네 갈 길은 멀고>의 맹인부부가수의 헤맴에 대한 이 시인의 진술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적 상황의 제시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맹인의식」에 강렬한 전파력을 띠면서 호소되어 온다.

<세상 모든 기다림의 노랠 부르네 눈맞으며 어둠 속을 떨며 가는 사람들을>에서 보이는 시대의식의 뚜렷한 조명에서, 이 시가 단순한 개인의 감성적 영탄에 그치지 않고 강렬한 하나의 도덕적 제시가 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예민한 감성과 도덕성의 결합이 이 시의 뛰어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한기팔씨의 『빛과 그늘』 (현대시학)은 원초적인 순수서정을 노래하여 환기력을 얻고 있다. <별의 운행은 엽맥 사이 물방울 하나의 밝은 쪽 그늘을 적시지 못한다>와 같은 대목에 나타나는 천진무후한 것에의 인식은 값진 것이다. 미세한 것들의 관계를 자신의 심적 공간에 형상화시키는 훌륭한 솜씨가 이 시의 두드러진 장점일 것이다. 시적 「에스프리」를 상실해 가고 있는 많은 작품들 속에서 이러한 작품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김성춘씨의 『가을에 오는 비』 (현대 문학)도 미세한 것에 대한 이 시인의 깊은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에는 미세한 것들의 인식을 통해 소외의 현장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깔끔하게 현상화 되고 있다. 이 시인은 늦가을에 내리는 찬비 속에 서있는 풀꽃들을 노래함으로써 살아 있음의 의지를 표출해 내고 있다. 찬비와 풀꽃과의 관계를 비극적인 관계에서가 아니라 친화의 관계로 파악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시영씨의 『빗소리』와 『남쪽』 (이상 「시문학」)은 자연과 안간을 「매치」시키면서 현실의식의 현상화를 시도한 작품이다. 이들 작품에 나타나는 자연의 「이미지」는 언어적 기교의 뒷받침으로 선열한 현실로 재조형 되고 있다.

<등성이로 허리를 뻗던 아픈 산맥이 울고 불에 탄 새들이 발을 오그리고>에서 우리는 감춰진 삶의 진실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문덕수 (평론가)·김주연 (평론가)·김종해 (시인)·이건청 (시인) 제씨의 의견을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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