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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의원 외교의 부작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본국 전임 발령을 받고 귀국을 하루 앞둔 함병춘 주미 대사에게 「뉴저지」에 사는 「하버드」 법대 동창생 「스워츠」 변호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두 사람은 작별의 대화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1시간뒤 「스워츠」가 다시 전화를 했다. 법무성의 「폴·미셸」검사가 자기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지금 한국 정부가 박동선 사건의 책임을 함 대사에게 지우고 그를 「희생의 양」으로 만들려고 하니 원한다면 법무성이 기꺼이 「협조」하겠다더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미셸」은 함 대사의 망명을 은근히 종용한 것이다.
함 대사는 그 말을 듣고 이게 바로 김상근이 어떻게 소위 망명이라는 것을 했는가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노발대발했다.
함 대사의 해석으로는 「미셸」은 한국 대사관 전화를 상당 기간 도청하여 자기와 「스워츠」가 동창 관계라는 것을 알고 「스워츠」를 망명의 거간꾼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대사관 도청 부분에 관한 함 대사의 해석은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미셸」이 「스워츠」를 통해서 함 대사의 망명 의사를 타진한 것만은 확실하다. 그것은 박동선 사건이라는 구체적인 문제를 떠나서도 한국, 한국인을 얕잡아 보는 행정부의 눈이 의회나 언론의 눈보다 그다지 나을 것이 없다는 좋은 실례다.
그런 증거가 될 만한 사건은 국무성에서도 일어났다. 국무성 출입 기자들은 해마다 출입증을 경신 받는다.
기자들은 신문과 관련된 도안의 「백·드로프」앞에 앉아서 증명사진을 찍는다. 작년 6월 국무성 당국은 『한국 불법 「로비」 활동의 광범위한 은폐』라는 전단 제목의 신문 기사를 「백·드로프」의 도안에 집어넣었다.
한국 특파원들이 항의를 하고 7월 1일의 국무성 정오 「브리핑」에서 미국 기자가 이것을 정식으로 문제삼았다. 국무성은 며칠을 끌다가 결국은 『한국의 불법적인…』이라는 두 낱말 위에 백지를 오려붙여 어물어물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갔다. 만약에 함 대사 망명 권유나 국무성 쪽의 증명사진 배경 사건 같은 것이 「유럽」의 어떤 나라나 「이스라엘」을 상대로 일어났다면 해당 국가는 말할 것 없고, 미국 의회와 언론이 두 팔을 걷고 나서서 법무성과 국무성을 매도했을 것이다.
미국 관리들의 이런 한국 경시 풍조의 책임의 상당 부분은 한국측에 있다. 서울에서는 중진급의 국회의원들이 예사로 미국 대사관의 참사관은 고사하고 정치 담당 서기관하고 식사를 하거나 장시간 대화를 나누는 것을 자랑으로 알아 왔다. 「워싱턴」을 방문하는 많은 국회의원들이 국무성 한국 과장을 예방하는데 부자연스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어떤 국회의원은 한국을 방문한 미국 의원들이 마추어 놓고 간 양복 꾸러미를 짊어지고 「워싱턴」에 나타나기도 했다.
그들은 이미 친한파로 되어 있는 하원의원 한두 사람한테서 의원 식당에서 5「달러」짜리 점심 대접을 받는 것으로 의원 외교를 했다고 대견스러워 했다. 방미 의원단을 위해 베푼 어떤 「리셉션」서 「카메라」의 「플래시」가 번쩍거리자 모두 우르르「칼·앨버트」의장 옆으로 몰려들고 촬영이 끝나기 무섭게 군중 틈으로 사라져 버리는 국회의원이 많았다. 이야기 상대를 잃고 혼자 서성거리는 「칼·앨버트」를 목격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미국 사람들은 찬사가 여간 헤프지 않다. 웬만하면 「원더플」이고, 상대방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는 참으로 이해하는 표정으로 지당한 말씀이라고 고개를 곧잘 끄덕거린다. 그런 미국식 거동에 익숙치 못한 사람들은 마침내 미국 의회나 정부가 철군이나 인권 문제에서 한국의 특수 사정에 동정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속단하고 「워싱턴」을 떠난다.
문제는 정치인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국무성 초청의 미국 여행을 염두에 두고 미국 대사관을 기웃거리는 일부 지식인들, 국립 대학 총장이나 각료급 정도의 지도층 인사로서 미국 정부 비용으로 삼류「호텔」신세를 지면서 미국을 방문하는 사람들 모두가 미국인들의 지금의 한국관에 상당한 기여를 해 왔다.
결국 미국 사람들, 특히 미국 관리들의 한국 경시를 뜯어고치려고 하기 전에 한국 사람들 스스로가 체통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미국의 오만한 한국관 시정 작업은 「워싱턴」이 아니라 서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김영희 <본사 편집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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