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이 전통시장 … 이상한 소득공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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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신용·체크카드로 결제하면 100만원 한도에서 세제 혜택을 주는 전통시장 소득공제에 커다란 허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 취재 결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영플라자와 유통업체인 다이소 등이 전통시장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사용처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영어학원 체인과 인터넷 쇼핑사이트에서 결제한 캄보디아 여행상품도 전통시장 사용액에 합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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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 회사원 이모씨는 올해 초 국세청 연말정산 홈페이지에서 소득공제 항목들을 확인하다 의아했다. 전통시장을 간 적이 거의 없는데 카드로 꽤 많은 금액을 쓴 것으로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가 롯데카드 사용 내역을 확인해보니 지난해 롯데백화점 본점 영플라자 유니클로(의류) 매장 등에서 쓴 금액이 전통시장 소득공제 대상에 포함됐다. 옛 미도파백화점 자리에 들어선 영플라자는 젊은이를 겨냥한 패션브랜드나 생활용품을 주로 판매하는 곳이다.

 이씨는 “연말정산이 끝난 3월에 영플라자 입점 업체에서 사용한 금액도 전통시장 사용액에 포함돼 있었다”며 “이대로라면 올해도 전통시장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

 생활용품 체인점인 다이소에서 쓴 금액도 전통시장 사용액으로 분류돼 나왔다. 카드 가맹점 이름을 확인한 결과 서울 강남구에 주소를 둔 다이소아성산업으로 나왔다. 업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곳은 일본의 대창산업이 지분의 34%를 보유한 한·일 합작기업이다. 다이소에서 파는 물건은 몇천원짜리가 대부분이지만 운영사인 다이소아성산업이 지난해 올린 매출액은 7465억원이었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 양천구청 옆 대형건물 안에 입주한 정상어학원도 지난해 전통시장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이었다. 어학원의 신용카드 가맹점 이름은 정상제이엘에스, 주소는 서울 강남구로 돼 있다. 양천구청 지역경제팀 관계자는 “양천구 학원은 분점이었고 강남구의 신용카드 가맹점 주소가 전통시장 속에 포함돼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학원 측도 전통시장 소득공제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통시장 소득공제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장 상인들을 위해 2012년 처음 도입됐다. 이곳에서 신용·체크카드로 쓴 금액을 소득공제해주면 전통시장 상인들이 매출을 올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백화점과 대형 프랜차이즈업체에서 사용한 금액도 포함되는 등 허점이 많다. 불합리한 공제로 덜 내는 세금만큼 누군가 더 부담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전통시장 상인을 지원한다는 취지도 빛이 바랜다. 전통시장에서의 사용액이 부풀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지금까지 전통시장 소득공제 규모나 효과를 공개한 적이 없다.

 정부 역시 세수가 모자라는 상황에서 애초 취지와는 동떨어진 불필요한 세금 감면을 해온 셈이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총급여의 25% 이상을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로 써야 한다. 초과분 중 일정 비율(신용카드 15%, 체크카드 및 현금영수증 30%)을 300만원 한도에서 소득공제해 준다. 전통시장은 이와 별도로 사용액의 30%를 100만원 한도로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소득과 신용카드 사용액이 많을수록 절세 효과가 크다. 따라서 중산층 이상에게 안 해줘도 되는 세금 감면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통시장 소득공제는 시·군·구청에서 전통시장에 해당하는 지번주소를 국세청을 통해 신용카드사에 넘겨주는 방식으로 처리된다. 카드사는 해당 주소에 있는 가맹점에서 일어난 결제 금액을 국세청에 통보하고, 국세청은 연말정산간소화사이트에서 개인별 사용 금액을 제공한다. 문제는 전통시장이 들어선 곳을 지번주소로만 관리하다 보니 실제 어떤 업체가 들어섰는지까지 자세히 파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롯데백화점 본점 영플라자 등이 포함된 경위는 누구도 속 시원히 설명하지 못했다. 롯데카드 관계자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자체와 국세청에서 넘어온 전통시장 주소에 본점 영플라자가 들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 중구청 전통시장팀 담당자는 “영플라자가 있는 주소를 전통시장으로 등록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지자체가 구역별로 전통시장을 지정해 등록하면 우리는 이 주소를 여신금융협회를 통해 카드사에 넘겨주는 역할을 한다. 만일 부적합한 곳이 전통시장에 포함됐다면 시·군·구청과 협의해 개선 방안을 찾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원배·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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