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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정서환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 4일자 본지 보도에 의하면 문공부의「78년 도 영화시책」은 어린이 영화의 제작과 수입에 각별한 역점을 두기로 했다 한다.
예술적으로나 교육상으로 절대 필요한 『양질의 어린이 영화』의 심한 부족 상에 비추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론 비단 영화뿐 아니라 모든 출판물과「오락부문」에 걸쳐 수준 높은 어린이용 주제가 풍성하게 개발·제작되었으면 좋겠다.
어린이를 둘러싼 현대 산업사회의 교육환경과 정서환경은 전반적으로 너무나 기계적이고 살풍경 하다.
교육·기예·오락·「게임」·연예·광고 등 모두가『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감성을 소유하면서 가치 지향적 사고 인을 만드느냐』하는 것보다도『어떻게 하면 유능한 기능인 또는 능숙한 소비자로 훈련시키느냐』하는 산업사회의 전략적 필요에 총동원되다시피 한 느낌이다.
현대식 도시생활과 주거환경 역시 어린이로부터 꿈과 서정과 탐미정신을 빼앗아 가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이런 냉혹한 환경과 전반적 사회기풍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영악스럽기만 하고 되바라지기만 한「앙팡·테리블」이 안되기를 바라는 것은 그 자체가 오히려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이제『집 없는 천사』같은 명작동화나 영화를 보고서 훌쩍거리는 사내아이들의 순진성이나「안데르센」의『성냥 파는 소녀』를 읽고서 눈물짓는 여자아이들의 순정 같은 것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게끔 된 것 같다. 아니 그런 감성 자체가 멸시 당하고 무용지물 시 되는 경향마저 없지 않은 세태다.
그러나 어린이 마음속에 싹터야 할 그 같은 감성이나 정서의 중요성은 당정엔 별 것이 아닌 것도 같지만 훗날의 훈훈한 인격함양과 인생관 형성엔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다. 그래서「워즈워드」같은 시인은 어렸을 적의 예쁜 무지개 꿈을 노래하는 가운데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까지 영 탄 하지 않았던가.
이 시구는 어렸을 적의 꿈과 성장력이 사람의 일생을 지배한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현대의 살벌한 어린이 정서환경을 개탄하는 경고로도 받아들여 무방할 것이다. 정서가 결핍된 기계적 상황 속에서는 아름다운 동심을 키워 낼 수 없으며, 그렇게 자란 어린이가 사랑·봉사·정의·평화를 숭상하는『아름다운 인간상』으로 형성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그렇듯 냉혹한 인간기계로 주조된 사람들이 이 세상을 좌우한다고 가정할 때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미래세계가 될 것인가는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지금 21세기의 전자화시대가 가져다줄 공학적「유토피아」의 꿈에만 한껏 부풀어 있는 듯하다.
실로 오늘의 절실한 과제는 그런 역「유트피아」에의 맹신이 아니라 인간성 자체를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길러 내 이 지구문명을 오도된 공학적 세계관과 과잉소비의 파멸 성으로부터 구해 내느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일차적인 과제는 우선 인간심성의 밑바탕인 동심을 아름다운 정서교육으로 순화하는데 있음을 깨우쳐야 하겠다.
아름다운 동심은 아름다운 정서교육 양질의 어린이 도서와 어린이들을 위한 오락, 수준 높은 연예 물·문예물의 보급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첩경일 것이다.
오늘의 어린이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모든 어린이를 정서결핍증에서 구해 내기 위해 어른들과 문화행정당국의 깊은 교육적 성찰이 있기를 소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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