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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매출 1조원 넘는 회장님, 고속도 휴게소 변기 닦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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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최등규 대보그룹 회장이 서해안고속도로 화성휴게소에서 경광봉을 들고 차량을 유도하고 있다. 그는 차량이 붐비는 휴가철이나 명절 연휴 때마다 휴게소로 출근해 교통 안내를 지휘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밑바닥까지 실패를 경험했던 최등규 대보그룹 회장과 족집게 경제학자 출신의 김경원 디큐브시티 대표는 공통점이 있다. 1주일에 한두 번은 청소부로 변신한다는 사실이다.

 인터뷰 장소를 서해안고속도로에 있는 화성휴게소로 잡았다. 현장 사진을 담겠다는 게 이유였지만, 매출 1조원 회사의 오너 경영인이 사업장 구석구석을 어떻게 훑고 다니는지가 더 궁금했다. 약속시간은 지난 16일 오전 10시, 최등규(66) 대보그룹 회장은 일찌감치 도착해 있었다. “사무실이든, 현장이든 출근시간이 오전 6시30분입니다. 휴게소에 올 때면 화장실 둘러보고 식당 조리사와 아침 식사를 하는 게 첫 번째 일과지요.”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업체인 대보유통과 대보건설·서원밸리(골프장) 등을 보유한 대보그룹은 지난해 매출 1조1000억원을 올렸다. 화성휴게소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대보유통 사업장 36곳 중 하나다. 최 회장은 화장실 변기를 닦고, 경광봉을 들고 차량 안내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나 ‘화장실 혁신’은 그의 자랑거리다.

 “경부고속도로 옥산휴게소 사업을 시작했는데 변기에 끼어 있는 묵은 때가 너무 거슬리는 겁니다. 역한 냄새도 진동했고요. 방법이 있나요? 수세미 들고 달려들었지요. 이때가 1995년입니다.”

 얼마 뒤 군 복무 중이던 큰아들이 상사들과 함께 휴게소를 찾았다가 이 광경을 목격했다. 명색이 기업 오너인 아버지가 변기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아들 표정이 굳어졌다. “전혀 부끄럽지 않았어요. 다만 아들녀석이 군부대에서 잠시 ‘아버지 직업을 속인 거짓말쟁이’가 돼버렸지요. 허헛. 어쨌든 화장실 문화를 개척했다는 데 나름 자부심을 가집니다. 지금이야 없으면 이상하지만 ‘관리인 실명제’도 가장 먼저 만들었지요.”

 요새도 화장실 청소를 하느냐고 물었다.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금세 오른팔 소매를 걷어붙이더니 대변기에 손을 집어넣었다.

 -맨손으로 점검을 하시네요.

 “그래야 청소 상태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어요. (대변기의 물 내려가는 부분을 만지작거리며) 여기가 이렇게 매끈매끈해야 청소가 제대로 된 겁니다.”

 -매번 그렇게 하나요.

 “저야 잠시 불편한 겁니다. 사업장을 내내 깨끗하게 유지하려면 최고경영자(CEO)가 움직이는 게 가장 확실하지요.”

 그가 화장실 다음으로 찾는 장소는 옥상이다. 자동차가 들고 나는 것부터 매점·주유소 등 휴게소의 모든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온다. 휴가철이나 명절 연휴 때면 어김없이 이곳에서 무전기를 들고 교통 통제를 지휘한다.

① 대변기 청소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최등규 회장. 그는 1995년부터 손수 변기 청소를 하면서 화장실 문화를 바꾼 인물로 꼽힌다. ② 직원들의 체중 감량 목표 숫자가 빼곡히 적혀 있는 최 회장의
수첩. ③ 김경원 디큐브시티백화점 대표가 서울 신도림역 앞 공원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디큐브시티]

 최 회장의 현장 경영엔 철칙이 있다. 사전에 예고가 전혀 없고, 반드시 사후 확인을 한다는 것이다. 운전기사도 그의 행선지를 모른다. 가령 지난 14일엔 전남 목포시 대성동에 있는 아파트 공사 현장을 다녀왔는데, 운전기사한테는 “새벽 3시에 출발해야 한다”는 한마디가 전부였다. 현지 출근시간을 오전 6시30분에 맞추기 위해 이렇게 일찍 나선 것이다. “공사장에선 안전체조부터 시작합니다. 그다음에 화장실을 점검해요. 여기서도 악취가 나면 안 돼요. 맨 마지막에 현장 사무소를 찾아갑니다.”

 이날 최 회장의 지적사항이 나온 건 사무실에서였다. “혹시라도 소통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소장실 창문에 설치된 블라인드를 걷어내라”는 지시였다. 이런 내용은 이날 오후에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임직원 3500여 명에게 공유됐다.

 목포에서 돌아오는 길엔 충남 아산에 있는 도로 확장 공사장을 찾았다. 이번엔 엉뚱하게도 김모 주임으로부터 ‘현재 85㎏인 몸무게를 연말까지 77㎏으로 줄이겠다’는 각서를 받았다. 자신의 수첩에 김 주임의 신상을 메모하는 것은 물론 비서실에 연락해 ‘다이어트 장부’에 이름을 올렸다. 비서실 관계자는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격려금을 지급한다”며 “현재 39명이 ‘특별관리’를 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직원들의 체중 관리를 회장이 손수 챙긴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자기 몸이 건강해야 가정이 평안하고, 회사도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지요. 그래서 건강의 척도로 몸무게를 관리하는 겁니다. 요새 회사가 성장하면서 채용이 늘고 있는데 최종 면접은 반드시 들어갑니다. 면접 전형이 아침 7시입니다. 건강과 근면은 기본 중의 기본 요건입니다. 저는 어떠냐고요? 1m78㎝에 76㎏이니까 아직 거뜬합니다.”

 서울 수서동에 있는 대보그룹 본사에선 점심시간에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못한다. 직원 건강을 위해서다. 혹시라도 최 회장에게 걸리면 “건물 10층까지 왕복 10회” 같은 벌칙을 받는다. 매년 창사 기념일엔 10㎞ 달리기를 하는데 최 회장보다 기록이 늦으면 2㎞를 더 달려야 한다.

 최 회장은 다이어트 서약이든, 걷기 벌칙이든 ‘눈’으로 결재한다. 해당 직원이 다이어트에 성공했음을 입증하는 사진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 최 회장에게 전송하는 식이다. “지시는 1%, 확인은 99%라야 회사가 탄탄해진다”는 게 그의 경영철학이다.

 이런 소신은 실패 경험에서 나왔다. 충남 대천이 고향인 그는 스무 살에 상경해 종로에 있는 영어학원 수위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여기서 껌 팔고 신문 판 돈을 독하게 모아 독서실을 낸 게 성공했다. 곧바로 스키·스킨스쿠버 장비 수입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전 재산을 털어 석산 사업에 손을 댄 게 화근이었다. 전북 익산에서 화강암 채석에 나섰다가 품질 문제로 하루아침에 파산하고 말았다.

 “건설업으로 전환해 청주공항 활주로 공사를 따내면서 어렵게 재기했어요. 이때 ‘앞으론 남의 돈을 쓰지 않겠다’고 작심했지요. 무리한 사업 욕심도 접었습니다. 노력한 만큼만 벌어야지 절대 요행을 바라지 않아요. 변기 청소든, 잡초 제거든 끝까지 챙기는 습관도 생겼고요. 두 번 망할 수는 없잖아요?”

 최 회장이 이렇게 전국을 누비고 다니는 스타일이라면 서울 서남권의 랜드마크인 디큐브시티 백화점·호텔을 경영하는 김경원(55) 디큐브시티 대표는 ‘집 앞’ 관리를 발 벗고 나선 사례다.

 김 대표는 이코노미스트 출신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근무하던 시절 국제 유가 흐름을 정확히 예측해 주목을 받았다. 2008년 골드먼삭스가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보고서를 내놨을 때 그는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 수요가 급감할 것”이라며 ‘유가 반토막’을 예언했다. 김 대표의 전망이 맞아떨어지면서 명성을 얻었다. 이후 2012년 9월부터 대성 계열 디큐브시티를 이끌고 있다. 경제학 박사에겐 낯선 도전이지만 “오랫동안 바라던 현장 업무”라며 영입 제의를 환영했단다. 그는 틈나는 대로 백화점 앞 디큐브파크를 청소한다. 신도림역에서 백화점, 인근 아파트 등으로 연결되는 하루 유동인구 40만~50만 명에 이르는 공간이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신입 직원 두세 명과 함께 나가 주변 정돈을 한다. “가족과 연인·친구들이 편안하게 쉬기도 하면서 주말이면 공연도 열리는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곳이지요. 대략 3000평쯤 될 겁니다. 처음엔 고객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쓰레기 줍기를 시작했다가 지금은 즐거운 숙제가 됐습니다.”

 기업 경영진에는 각자 주어진 역할이 있는데 CEO가 빗자루까지 잡는 것은 조금 비효율적이지는 않을까? 임직원이나 지역 주민에게 혹시 쇼로 비치는 것은 아닐까? 김 대표는 “남들이 처음엔 그렇게 봐도 어쩔 수 없다”며 “차곡차곡 시간이 쌓여야 신뢰가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명한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잖아요. 깨진 창문을 그대로 방치하면 건물 관리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처음엔 담배꽁초가 하나 둘 쌓이다가 나중에 우범지대로 전락한다는 거지요. 세상에 사소한 업무는 없지요.”

화성=이상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골프장서 무료 콘서트, 스터디존·쉼터 마련 … 톡 튀는 경영

최등규 회장과 김경원 대표는 경영 스타일도 독특하다. 상식을 뒤집어야 회사가 사랑받고 성장도 할 수 있다는 게 두 사람의 지론이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서원밸리 골프장은 연중 손님이 가장 많이 몰리는 날을 일반인에게 무료 개방한다. 최성수기인 매년 5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골프장에서 ‘그린 콘서트’를 여는 것. 올해는 31일 개최된다. 이날 골프장 페어웨이는 주차장으로, 벙커는 어린이 씨름판으로 바뀐다. 최 회장은 “지역사회와 함께한다는 뜻에서 기획한 행사”라며 “잔디 보수 비용 등을 포함해 5억여원을 포기해야 하지만 만족도는 기대 이상”이라고 말했다.

 디큐브시티의 경영 슬로건은 ‘언제든지 놀러오세요’다. 곳곳마다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쉼터가 마련돼 있고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스터디존도 있다. 인근 아파트 부녀회의 단골 회의장이 되기도 한다. 지역사회 가치를 높였다는 점이 평가돼 디큐브시티는 지난해 미국 도시토지연구소로부터 ‘세계 최우수 부동산 프로젝트’로 꼽히기도 했다. 김 대표는 “당장 매출에는 마이너스일 수 있겠지만 이 같은 친밀감은 중장기적 성장을 위한 든든한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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