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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사들에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2월 들어 졸업「시즌」을 맞은 대학가는 올해도 약 3만8천명의 새 학사들을 배출한다.
이들은 적어도 16년간의 형설의 공을 쌓고 이제 한 사람의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
이 뜻깊은 때를 맞아 졸업생 각자는 우선 그 부모님들과 스승들의 은공에 대해 깊은 경의와 감사를 표할 줄 알아야만 하겠다. 그 분들의 피나는 노고와 희생과 사랑이 없었던들 제군들이 과연 그 자랑스러운 학사 모에「가운」을 입을 수가 있었을 것인가.
또 한가지 잊어선 안될 일은 졸업이 곧 학습의 종지나 완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학문이든, 인생사든 정작 본격적인 공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대학에 다닐 때는 시험 때문에라도 공부를 하던 사람이 막상 교문만 떠나면, 책 한 권 안 읽는다는 평판을 더러 듣게 되는데, 이야말로 대학을 졸업한 지성인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겸허하고 탐구적인 자세에서 평생 쉬지 않는 자기 연마와 수신의 길을 걸어 주기 바란다.
졸업은 또한 봉사생활의 시작을 의미한다. 지금까지가 수 혜의 기간이었다면 앞으로의 생애는 봉사와 기여의 생활이 돼야 하는 것이다.
무엇인가 사회와 가정과 공동체를 위해 땀흘려 일해야만 할 차례다.
연만하신 부모를 위해, 자기 직장의 발전을 위해, 소속 공동체의 복지를 위해, 각자 자기 위치에서 최선과 성실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이 공공생활의 과정엔 예기치 않던 좌절과 실망이 수반되기도 할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든가 기대치와 소 여와의 불일치, 또는 집단「메커니즘」속에서의 소외감 같은 것이 바로 그런 사례일 것이다.
개중에는 또「성공」과「출세」의 진도 차 때문에 숱한 구김살들이 잡혀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련 속에서 자기 품격의 존엄성과 안분지족의 의연함을 유지할 수 있는 자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승자임을 배워야 하겠다.
조급한 출세욕이나 초조한 경쟁심리는 소속 공동체 뿐 아니라 자기자신의 심신을 위해서도 결코 이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의 사회에서 성공이니 행복이니 하는 것은 결국 공동체 속에서 의한 조그만 기능에의 성실성과 일치되는 것이지,「중세기사」적인 영광 같은 꿈은 이미 오늘의 이야기일순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성실성이란 것이 반드시 기계 부품과 같은 피동성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성실성은「성실한 기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성실한 창조」를 의미하는 사명감이다. 이것이 없이는 새 세대의 진출을 통한 사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회 각 방면에 진출할 새 학사들에 대해 그 어떤 창조적인 신 풍을 기대하는 이유도 바로 그 점에 있는 것이다.
보다 합리적인 사회보다「룰」에 따라 움직여지는 사회, 그리고 누구나 성실하게 일하기만 하면 그 만한 보장을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풍토 조성을 위해 졸업생 제군의 청신한 도덕적 진지성이 견지되기 바란다.
겸해서 이들 새 후진들을 맞아들이는 사회 역시 아량 있고 이해성 깊은 태도로 임해 주어야 하겠다. 인재란 따뜻한 격려와 후원 속에서 자라나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대학졸업생의 평균 취직 율 61%(77년 도)란 숫자는 진지한 연구의 자료가 되어 마땅할 것이다. 영광의 졸업「시즌」을 맞아 졸업생 제군의 분발과 건투를 빌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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