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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충분한가 도의교육 말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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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야 「말숙이」, 너 또 「쌩말고」「묵념」해.』
국민학교 6학년 어린이들이 주고받는 대학의 한 토막이다. 얼핏 정상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어린이들 사이에 통하는 은어-. 『말많은 아이야, 거짓말 말고 입을 다물어라』라는 말이 이렇게까지 변했다.
국민학교 어린이들은 물론 중·고등학교·대학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은어가 유행하고있다.

<대학생엔 4백종>
담임선생을 「담식이」라고 부르고, 흔히 「공갈」로 통하던 거짓말은 한걸음 더나가 「쌩깔」「쌩」 또는 「앵갈」「앵」이 되고 국민학교 3학년 짜리가 벌써부터 극장을 「도서관」이라고 부른다. 은어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심해져 10대들이 담배를 「김밥」이니 「구름과자」니 하거나 술을 「교재」「부교재」(안주) 「참 이슬」 등으로 부르고 있는데 술과 담배에 대한 은어만도 각각 16개가 넘는다는 것(덕수상고 신계식 교사 조사).
최근 서울여대 김해성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은어는 일상 용어에서부터 학교생활, 남녀 교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4백9종이나 채집돼 충격을 주었다.
이같은 숫자는 70년의 87종에 비해 4·7배에 달해 이러다가는 자라나는. 세대와 기성세대는 우선 언어생활에서 엄청난 단절을 가져올 염려가 있다.
은어뿐만이 아니라 요즈음은 국적도 알 수 없고 어원조차 불확실한 괴상한 언어가 젊은층들 사이에 거칠게 번지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내 어느 중학교 2학년 2개 학급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어이구야」(33명) 「죽갔네」(29명) 「괴롭고 싶구나」(20명)등 은어 아닌 저속한 말을 사용하는 학생들이 조사대상 1백21명 중60%인 73명에 달한 것으로 밝혀졌다(서울 도곡 국교 이두헌 교사 조사).
이 조사에 따르면 40%인 48명만이 이같은 말을 한번도 쓰지 않고 있으며 44명은 두 가지 이상의 비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죽갔네」(29명)는 철자법은 물론 말뜻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무턱대고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표기만 봐도 「죽갔네」(13명), 「죽겠네」(3명), 「죽같네」(2명), 「죽간네」(7명), 「죽가네」(2명) 등 멋대로 내놓고 있었다.
많은 청소년들은 말의 참뜻은커녕 말이 성립되지 않는 「말도 아닌」말을 멋대로 지껄이며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어원조차 불확실>
국민학교 어린이들이 쓰고 있는 말 중에 「야마올려」(약올려) 「쪽 팔린다」(얼굴 팔린다) 「괴롭고 싶구나」「통박잰다」(멋대로 생각한다) 「엉기다」(싸우다) 「매식이」(깍쟁이) 등은 우선 말의 근원부터가 알 수 없는 저속한 언어들-.
새싹 회장 윤석중씨는 이같은 현상을 『언어의 파괴』라고 규정했다. 어른들의 나쁜 말이 청소년들에게 전염돼 이들의 언어를 오염시키고 이 오염 상태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참뜻을 변질케 하고 나아가서는 발음마저 거칠어져 「된소리」가 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새끼」란 말(단어)은 원래 귀여운 말이어서 결코 욕이 될 수 없는 뜻을 지녔으나 전쟁을 치르고 난 다음부터 욕으로 변질됐고 그 앞에 더욱 험악한 단어가 붙어 「욕지거리」가 된데다 이제는 발음마저 강해져 「쌔끼」로 변했다.
「닦는다」가 「딱는다」로, 「닦으세요」가 「딱으세요」가 되더니 한걸음 더 나아가「딱세」로 줄었고 「소주」가 「쏘주」로, 요즈음은 「쐬주」라야만 소주의 참뜻을 지닌 양 보편화 돼가고 있는 실정이다.
또 「쎄련됐다」고 말해야만 「세련」의 뜻이 실감 있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말 공해에 무관심>
속된말과 언어가 점차 늘어나는 현상을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 내지는 청소년들의 반항심리 때문으로 풀이하는 학자들도 많다.
모방 심리가 강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층은 곧잘 비판적이며 사회 현상에 대해 회의를 갖게돼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부작용으로 유발된 것이라고 성대 윤병노 교수(문학평론)는 진단했다.
『도시 공해에 대해서는 활발한 대책이 논의되지만 언어 공해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한 것 같아요. 언어의 「저속화」는 정신공해의 극단이라고 생각됩니다. 언어란 사상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어 정화 없이는 의식구조를 바로잡을 수 없고 의식 구조를 바로잡기 전에는 교육을 기대할 수는 없어요. 따라서 언어 정화가 무엇보다도 시급합니다』- 윤 교수의 설명이다.
서울 미동국교 황생연 교사(44)는 우선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서 학교에서 고운말 쓰기를 생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정에서 막 쓰는 나쁜 말을 배워서 학교에서 퍼뜨리고 또 학교를 떠나서는 주변에서 나쁜 말을 배우는 경우가 많아 우선 가정과 학교에서 고운말을 쓰고 이와 함께 어린이들의 불량환경을 없애는 등의 정화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먼저 가정서부터>
대체로 유치원에서부터 국민학교 2∼3학년까지는 선생님들이 「경어」를 쓴다. 그러나 4학년 이상 올라가면 선생님들의 「경어」는 차차 사라지고 심할 경우에는 욕설까지 튀어나오기도 한다.
가정에서 부모들로부터 경어로 듣는데 익숙해 있지 않은 어린이들에게 고작 1∼3학년사이 「학교 안에서의 고운말」은 어린이 언어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했다. 따라서 어린이들에게 『고운말을 써야한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언어 순화에 대한 효과적인 방안으로 서울대 사대 박갑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제의했다. 『국어 정화를 위한 범 국민 운동 등을 통해 생활용어에서부터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 국어 순화 운동을 펴나가야 하며 이와 함께 고유 언어의 발굴활용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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