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8)김환관 - 고애무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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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양 손님들이 온다고들 술렁거렸다. 큰방 빽빽이 들어앉아 잡담의 꽃을 피우던 아낙네들이 자리를 차고 일어나 밖으로 몰려나갔다.
『귀한 댁 부인들이실텐데 모두 보행으로 오시는구랴.』
『여섯 분인가베. 저 두 번째가 임경업장군의 작은 댁인가보군. 먼발치로 봐도 학처럼 끼끗하구랴.』
『남정네들은 멀찌감치 뒤따라 오는군. 예닐곱분쯤 되나보오.』
『나귀에다 시주바리를 실었군.』
회천암 개산이래에 처음 보는 귀한 손님들이기 때문에 아낙들은 연신 감탄하고 연방 귀엣말이 잦았다.
늙은 암주 여스님과 두 젊은 이승과 앳된 사미와 한 중늙은이 막일꾼 이렇게 다섯이 회천암 식구의 전부였다. 모두들 암자 어귀로 나왔다.
본시 부처님을 모시는 승려에게 있어선 속인들이 분별하는 신분을 가려 접대할 필요는 없다. 속인의 신분이란 어디까지나 사바의 것이지 사문(사문)과는 관계가 없으며 더군다나 부처님을 모시는 승려의 처지로서는 중생에 대한 차별대우를 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어디 그런가. 같은 신도라 하더라도 한양손님과 인근의 촌부와는 함께 보아지지 않는다. 하물며다. 임경업은 그 명성뿐이 아니라 당상관의 신분이고 그 권속도 그런 대접을 받는 지체인데 범연한 접대를 할 수는 없었던 듯싶다.
앞장선 부인이 돌층계의 마지막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아니 지긋한 점잖은 여인이었다. 그때 늙은 암주가 합장한 채로 허리를 굽히다가 곁눈질로 주변을 둘러봤다.
『혜초는 어딜?』
암주 여스님이 나직이 물었을 때에야 젊은 여승도 자기 주변을 둘러봤다.
『글쎄요, 고대 함께 나왔는데요.』
『어딜 갔누.』
아주 짜증스럽게 씹어뺕은 늙은 암주 스님이 다시 손님 쪽에다 대고 허리를 굽혔다.
『어려운 걸음을 하셨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길은 빤하네 꽤 초간하군요, 스님.』
앞장 선 부인이 가볍게 목례를하며 퍽 틀진 한마디를 흘리자 뒤다라 다른 여인들도 마지막 돌층계 위에 올라섰다.
『길이 미끄러운데 오시느라고 고생을 하셨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절이 퍽 아담하군요.』
셋쨋번 부인이 초라한 암자를 훑어보며 그런 말을 흘렸을 때 두 번째로 올라왔던 그 학처럼 기품있는 여인은 소리없이 더운 입김을 뿜어내는데 그 눈이 신비롭게 빛나고 있었다.
암자 큰방으로 인도된 부인들은 한결같이 실망한 표정들이었다. 너무 초라한 암자에 놀라움마저 나타냈다.
『아니 혜초는 어딜 갔기에 아직 안보이냐?』
『글쎄요.』
『불러와!』
늙은 암주의 눈빛이 날카롭고 차가왔다.
유주현 김세종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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